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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기 Mar 02. 2023

냉이가 되고 싶다

<40일간의 글쓰기>

2월 한 달 동안 냉이를 가장 많이 먹었다. 지금 아니면 못 먹는 냉이를 내 몸에 적금을 붓듯이 매끼마다 먹었다.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서 먹고, 바지락을 넣어 냉이 된장국으로 먹고, 가끔씩 바삭하게 튀김으로 먹는다. 튀기면 다 맛있다고 하지만 바삭한 냉이 튀김은 정말 맛있다.


입춘이 지나고 언 땅이 녹기 시작하면 겨우내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냉이를 캐러 하나 둘, 밖으로 나온다. 냉이는 심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다. 하지만 아무 땅에나 다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 곳에서 캐지도 않는다. 냉이 스폿이 있다. 깨끗하고 튼실한 냉이가 깔린 양지바른 언덕에는 아직은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닷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하루 종일 붙어있다.


냉이가 있는 곳에는,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아침마다 그곳으로 출근하시는 할머니도 있고, 도시에 있는 자식들에게 주려고 나오신, 작년 가을 암으로 아내를 멀리 떠나보낸 아저씨도 있고,  세월 아픈 남편 수발을 마치고 우울증 약을 드시고 있는 아주머니도 있다. 그리고 항상 남들보다 며칠 빨리 냉이 캐기를 시작하는 억척 어멈 우리 엄마도 있다.


춥고 기나긴 겨울, 땅에 바짝 엎드려 속으로 속으로 하얀 뿌리를 깊게 내리는 냉이는 나물이지만 뜯는 게 아니라 캐내야 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물들은 어찌 그리 단맛을 내는지! 남해 섬초가 그렇고 겨울 냉이가 그렇다. 둘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맛이다.


땅에 바짝 엎드려 있어도 나만의 길고 하얀 뿌리를 가진 냉이가 되고 싶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쓴맛은 전혀 없고 오히려 단맛이 나는 냉이가 되고 싶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을 햇볕 아래로 불러 모으는 냉이가 되고 싶다.


이 봄, 냉이 꽃 피어 쇠서 못 먹기 전에 부지런히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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