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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Feb 14. 2024

똥 혼자 잘 싸는 우리 아이, 그동안 수고많았어

미국 영유아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36개월 차

미국의 병원에서 이제 만 3살이 된 아이의 진료를 위해 그동안 작성한 차트를 읽어보려고 하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많은 차트가 쌓여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 일정대로 검진을 다 완료했다면, 불과 36개월 안에 12번이나 소아과를 방문한 것이죠. 그만큼 3살 이전에는 아이가 손이 많이 가고, 확인할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3세부턴 성인이 될 때까지 소아과에서 1년에 한 번씩만 건강검진을 하게 됩니다. 이제 아이가 충분히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pre-school(미국 어린이집)을 들어가는 시기인데요, 그러면서 소아과 의사의 손길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는, 대견하면서도 다소 서먹해지는 순간입니다.


3살 전에는 아이가 올 때마다 나이에 따라 항상 정해진 뭔가 할 것이 있었지만, 이제부터 1년마다 이루어지는 정기 검진에서는 방문의 목적이 조금 다릅니다.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하는 검사보다는, 아이에 맞추어서 검진이 이루어지게 되죠. 만약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이 있다면, 증상은 잘 조절되고 있는지, 약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 물어보며 관리를 해줍니다. 만약 ADHD가 있다면 학교에서 집중은 잘하는지, 성적은 괜찮은지, 밥은 잘 먹는지 (ADHD 약의 흔한 부작용) 확인하고요. 이처럼 보다 각자 아이가 가지고 있는 만성질환의 관리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간혹 아이가 증상이 있어도 이아나 부모가 그 심각성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있기 전 미리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식 같은 경우, 스테로이드 흡입기로 폐의 염증을 조절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섬유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국 소아과에서 1년마다 검진을 굳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의료와 보험 문화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우선 한국과 다르게 내가 원할 때 동네 의원을 아무 때나 방문 힐 수 없습니다. 보통 원하는 날짜 몇 주 전에 예약을 잡아야 의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저도 제 주치의를 보기 위해서 3주 전에 예약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마다 보는 정기 검진은 보통 보험에서 전액 지원을 해 주는데, 그 외에 내가 원할 때 의사를 보려고 하면은 추가적으로 돈을 내야 합니다. 금액은 보험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10불, 많게는 200 불까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매년 있는 공짜 건강검진에 그동안 생겼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소아과에서는 정기검진을 well child visit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환자가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가지고 오면 원래 정해진 진료 시간 20분을 훨씬 넘기 때문에 이게 무슨 well child냐며, 전공의들끼리 서로에게 푸념을 늘어놓곤 합니다.


마지막 관문: 똥오줌 가리기


이 나이 때 모든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되는 것 중 하나가 제대로 대소변을 가리는지입니다. 배변훈련을 마치는 적절한 시기는 24개월 에서 36 개월 사이라고 보는데, 사실 많은 아이들이 이 시기에 큰 문제없이 배변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칩니다. 36개월이 된 아이의 98%가 대소변을 가린다고 하죠[1]. 그래서 36개월 차 검진에 아이가 제대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세 살이 되면은 아이들이 preschool(어린이집)에 가게 되는데, 아이가 아직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면 일일이 기저귀까지 갈아줄 수 없어 안 받아 주는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3세 이후에 배변 훈련이 안된 경우는 보통 3가지입니다. 고집을 피우거나 (witholding), 퇴보를 하거나 (regression), 무서워서 (fear) 그렇습니다[2]. 각각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고집 (witholding)

3세 전후는 아이와 부모는 힘싸움을 하는 시기입니다. 사랑하는 자식과 싸움을 한다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힘싸움 (power struggle)은 소아과 교과서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입니다. 아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독립적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데, 막상 어른에 비하면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뭘 먹고 뭘 싸는지 밖에 없거든요. 한편으로 이런 무력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나마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을 무기로 삼으려고 합니다. 계속 기저귀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서 부모가 어쩔수 없이 나의 기저귀를 바꿔주게 하고, 변기로 가라고 하는 부모의 지시에 반항하는 것입니다. 


싸움의 해결책은 평화겠죠? 만약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똥오줌을 가리지 않는다면, 배변 훈련에 대한 모든 것을 중단하고 휴전을 가집니다. 2주에서 10주 동안은 배변에 대한 칭찬도, 꾸지람도,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가 똥오줌 가리기에 무관심을 보이면, 아이가 똥오줌 가리기로 고집을 피우는 것이 무의미해지게 됩니다. 부모에게도 휴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배변훈련에 대해 불안함이나 조급함 같은 감정을 내려놓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결국 성공적인 배변 훈련의 핵심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립적인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배변 훈련을 시작을 할 준비가 되면, 칭찬과 보상, 따듯한 응원을 통해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배변 훈련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퇴보 (regression)

대소변을 잘 가리다가 갑자기 다시 기저귀를 차게 되는 것은 부모로서 참 힘 빠지는 일일 겁니다. 아이의 발달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불안함이 급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대소변 가리기 퇴보는 흔한 일이고, 대부분 일시적이며, 아이가 향후 정상적으로 발달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간혹 상황적 스트레스 (동생이 새로 태어난 경우)가 원인이 될 수 있으나, 이무 이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해결책의 핵심은 위와 비슷하게 칭찬과 응원을 통해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만 언젠간 아이가 대소변을 가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치를 확실히 전달하고, 아이가 그 기대치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퇴보의 원인이 뚜렷하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아이가 동생이 새로 태어난 후에 자신이 받는 관심과 시간이 줄어들어 퇴보를 했다면, 아이와 꾸준히 1대 1 시간을 보내는 것을 권합니다. 몇 주가 지나도 진전이 없다면 아예 배변 훈련 방학을 가진 후 (적어도 4주) 느긋하게 다시 시작해 보면 됩니다.


Fear (공포)

아이에겐 변기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자기 몸집에 비해 워낙 큰 구멍에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데, 잘못하면 자기도 쏙 빠져서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공포를 우선 공감해 주고, 화장실 가는 것을 무서운 경험에서 즐거운 경험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바보 같은 장난이나 농담, 노래 같은걸 참 좋아하죠? 누가 먼저 변기에 가서 앉나 시합하기, 이런 것도 재밌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에 보려면 1년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그만큼 소아과의 손길이 덜 필요하단 말이니, 대견스럽기도 하네요. 앞으로 1년마다 건강한 모습으로 꼬박꼬박 소아과를 찾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image credits: Pixabay - Shutterbug75


references:

1. 소아의 대소변 가리기.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https://health.kdca.go.kr/healthinfo/biz/health/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View.do

2. Mount Sinai Parenting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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