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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Feb 11. 2024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는 길

미국 영유아건강검진 (Well Child Check) 30개월 차


그동안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 이제 30개월이 되면 제법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자신의 성과 이름을 대면서 자기소개도 할 수 있고 혼자서 계단도 쉽게 오르락 내리락 하고, 물건을 정리하거나 상황극 놀이를 할 만큼 사회성도 발달해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대소변 가리는 것도 배우면, 기저귀를 갈아줄 필요도 없어서 집 밖으로 나가도 얼굴 붉힐 일이 적어지게 되죠.


미국에서 아이는 3살이 되면 toddler에서 preschooler로 신분상승을 합니다


이처럼 사회인이 될 준비를 마쳐가는 아이는 곧 신분도 바뀌게 됩니다. 미국에선 통상적으로 출생부터 12개월까지는 infant, 12개월부터 36개월까지는 toddler,  36개월부터 60개월(5살)까지 preschooler라고 부릅니다. Toddler라는 단어는 "불안정하게 걷다"라는 toddle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것인데요, 3살이 되면 너무나 잘 걷고 뛰기 때문에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3살이 되면 단체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화가 되어 preschool(어린이집과 비슷한 개념)을 다니기 시작하기 때문에, preschooler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30개월 검진은 아이가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는 시간입니다. 한국과 미국 둘 다 30개월에 영유아 검진을 하도록 되어 있고, 이때 9개월, 18개월 검진에 했던 것처럼 정식 검사도구를 사용해 발달을 평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검사도구를 통해 운동이나 언어, 인지 능력에 이상이 있다고 발견이 되면, 일찍이 이에 대한 치료를 해주기 위함입니다. 만약 발달지연이 있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아이를 preschool에 보내면, 아이의 발달지연이 오히려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른 진단과 치료를 통해 어려움 없이 preschool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1].




미국에서 사용하는 발달검사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흔히 쓰이는 도구로는 ASQ-3 (Ages and Stages Questionnaire), SWYC (Survey of Well-being of Young Children), PEDS (Parents' Evaluation of Developmental Status) 등이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수련받던 신시내티 어린이병원에서는 SWYC을 사용했는데, 제가 지금 있는 Los Angeles General 병원에는 ASQ-3을 사용하더군요. SWYC이 조금 더 최근에 나온 검사도구라고 하던데요, 전반적으로 이런 도구들의 정확도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2]. 다만 preschool을 들어가기 전 아이가 행동문제(폭력성, 과다활동 등)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데, ASQ-3는 이런 내용이 빠져있기도 하고, 문항도 길고 많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저는 SWYC을 조금 더 선호하기는 합니다.




만약 검사에서 이상결과가 나오면, 부모에게 결과를 설명해 주고 발달지연을 다루는 기관으로 안내를 해줍니다. 사실 이런 기관을 이용하기 위해서 의사의 소견서가 필요한 것은 아니나, 미국은 아이를 워낙 자주 소아과에 데려와 검진을 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발달지연이 있다는 사실을 흔히 소아과에서 처음 알게 됩니다. 다만 발달지연은 종류도 다양하고, 이에 따른 전문적인 인력(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등)이 필요할뿐더러 잦고 정기적인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아과에서 정밀분석과 치료를 하지는 않고 전문기관으로 안내를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어디로 안내할지는 아이가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몇 살인지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우선 미국 전국적으로는 36개월 이상이면 아이가 사는 지역에 초등학교에서 발달지연 분석 및 치료를 받게 되고, 36개월 이하이면 "Early Intervention"이라고 불리는 서비스를 받게 되죠. 이런 early intervention 서비스는 주마다 시스템이 조금씩 다른데요, 제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를 기준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선 이런 발달지연 서비스를 "Early Start"라고 부르고, "Regional Center"라고 불리는 정부와 연계된 민간 비영리 단체에 가서 발달지연에 대한 분석과 치료를 받게 됩니다. 우선 부모가 regional center로 의뢰를 하면, service coordinator가 배정이 되어 일련에 과정에 대해 안내를 해주게 됩니다. 분석 이후 아이가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판단이 되면, 아이의 강점과 약점, 부모의 걱정, 필요한 서비스를 종합해서 정리한 Individual Family Service Plan이라는 서류가 작성되고, 아이가 치료를 집에서 받을지, 센터에서 받을지 결정합니다. 아이가 언어 지연이 있으면 언어치료, 운동 지연이 있으면 물리치료 및 작 업치료, 행동문제나 사회성 지연이 있으면 행동치료, 지능지연이나 학습장애가 있으면 특수교육에 배정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45일 안에 완료되도록 정해져 있고, 분석과 치료에 대한 모든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이 된다고 하니, 미국치고 꽤 빠른 시간 안에 파격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국의 의료비가 정말 비싸기로 유명하고 워낙 자본주의적 사회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서는 법제화와 인프라 및 비용지원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한국은 국민 건강보험을 통한 의료보장성이 세계 최고라고 흔히 말하지만, 발달지연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발달지연 치료(언어치료, 물리치료 등)는 한국에서는 현재 다 비급여이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지원이 되지 않아 민간실손보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이마저도 최근에는 지급이 잘 안 된다고 해 발달지연이 있는 아이의 부모님들이 빚을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참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3]. 아이가 발달지연이 있다고 하더라고 부모가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출산율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은 갈수록 초산 연령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미숙아와 발달지연 환아의 수가 필연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발달지연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도 더욱 시급해 질것입니다.



image credit: Pixabay - Kasman


references:

1. Lipkin PH, Macias MM, Norwood KW, Brei TJ, Davidson LF, Davis BE, Ellerbeck KA, Houtrow AJ, Hyman SL, Kuo DZ, Noritz GH. Promoting optimal development: identifying infants and young children with developmental disorders through developmental surveillance and screening. Pediatrics. 2020 Jan 1;145(1)

2. Sheldrick RC, Marakovitz S, Garfinkel D, Carter AS, Perrin EC. Comparative accuracy of developmental screening questionnaires. JAMA pediatrics. 2020 Apr 1;174(4):366-74.

3. https://m.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1031083001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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