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유아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24개월 차
미국 소아과를 찾는 생후 24개월 아이는 이론상 문제가 없어야 하는 아이입니다. 웬만한 예방접종은 24개월 이전에 다 맞기 때문에 수많은 감염병으로부터 면역이 생긴 상태라 이제 4살이 되기 전까지는 매년 독감 백신 빼고는 맞을 백신이 없습니다. 또한 6개월 전 18개월 차 건강검진에서 정식 발달평가를 하고 자폐증 선별검사를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4개월 검진에는 추가 검사를 해 문제가 없는지 더욱 확실히 확인을 합니다. 12개월 때 했던 빈혈수치와 납 수치를 다시 확인하고, 18개월 때 했던 자폐증 검사를 한번 더 반복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한국이나 아이가 두 살이 되면 부모에겐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문제 같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생떼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흔히 "뗑깡"이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원래 경련, 혹은 간질을 뜻하는 일본 의학용어인 "전간"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니, 생떼가 얼마나 격할 수 있는지 부모님들의 고통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생떼를 "tantrum"이라고 부르는데요, 두 살부터 이런 tantrum이 시작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terrible two", 즉 "끔찍한 두 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떼 부리는 것이 육아에서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보니, 이미 숱한 육아서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지 다루고 있고, 최근에는 많은 한국의 부모님들이 오은영 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있죠.
제가 미국 소아과 전공의로서 배우는 훈육의 기본적인 원칙도 육아서나 오은영 선생님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워낙 숙지해야 되는 내용이 많다 보니, 저도 공부하는데 쉽지 않았고, 비슷하게 느끼는 젊은 부모님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미국에서 수련을 받으며 그나마 도움이 됐던 것은, 아이의 올바른 발달을 위한 효과적인 과학적 결과들을 간단한 원칙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저희 병원의 발달행동학 수련은 뉴욕의 유명한 병원인 Mount Sinai Hospital에서 개발한 커리큘럼을 사용하는데요, 육아에서 중요한 내용을 6개의 원칙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두었습니다.
왼쪽부터 안정된 애착, 자율성, 자기 조절, 조망수용, 문제해결, 학구적 지식을 뜻합니다. 대체적으로 왼쪽에 있는 원칙 (예: secure attachment, 혹은 안정된 애착)이 어릴 때 중요하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나이가 많아질 때 중요한 원칙입니다. 이 중 아이가 Tantrum을 부릴 때 가장 관련 있는 두 원칙은 self-regulation (자기 조절)과, perspective-taking (조망수용)입니다. 사실 내용 자체는 많은 부모님들이 이미 알 수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단어를 붙이며 정리하는 게 도움이 돼서 적어보았습니다.
Self-regulation (자기 조절)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행동, 집중력을 관리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Self-regulation이 잘 안 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말도 가리지 못하고, 툭하면 화내거나 울어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살기 쉽지 않겠죠? 생떼를 부리는 아이는 아직 self-regulation 능력이 발달되지 못해서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이해해 주고 능력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아이를 대해주어야 합니다.
positive reinforcement (긍정적 강화) -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항상 관심을 원합니다. 보통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생떼를 쓰면 미운 관심이라도 관심을 더 주게 되고, 밥을 혼자 먹거나 옷을 입는 것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했을 때는 아무래도 관심을 덜 주게 됩니다. 아이는 만약 생떼를 써야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계속 생떼를 부릴 것입니다. 따라서 생떼를 부릴 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점점 그 빈도가 줄겠죠. 반대로 바람직한 행동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칭찬해 주어 positive reinforcement를 유도합니다.
setting clear boundaries (확실한 선긋기) - 이때는 아이가 얼마나 부모가 자신의 요구를 수용해 주는지 탐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건 안된다고 꾸준하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아이가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사고 싶다고 생떼를 부릴 때마다 들어주면 안 된다는 얘기죠. 다만 이럴 때 아이 곁을 지키며 속상할 수 있다고 그 마음을 인정해 주고, 다독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살인 아이는 많은 경우 자신의 감정을 아직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더 생떼를 부릴 수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을 다음과 같이 대신 표현해 주어 적절한 단어를 찾아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 속상할 수 있어. 네가 저 장난감을 가질 수 없어 속상한 거 알아. 재미있어 보이고 가지고 놀고 싶은 거 나도 알지만 오늘은 사줄 수 없어."
Time-out - 보통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할 때 작전시간을 time-out이라고 하는데, 아이가 tantrum을 부릴 때 잠깐 감정을 추스를 시간 가지는 상황에 쓰이기도 합니다. 오은영 선생님이 언급해서 유명해진 "생각하는 의자"도 Time-out의 일종입니다. 다만 아이가 생떼를 부릴 때마다 무분별하게 Time-out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아 권하지 않습니다. 30초가량으로 짧게 할 때, 그리고 아이가 24개월 이상이면서 신체적으로 폭력적일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 이외에 효과적인 time-out을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숙지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 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 사람들이 없는 지루한 곳에서 하기
- 침대에서 하지 말기 (자는 것이 벌이라고 생각하게 하면 안 됨)
- 설명은 아이가 안정이 된 이후에 하기 (무엇을 느꼈는지,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만약 time-out이 효과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경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물건을 치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가령 스마트폰을 가지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면 스마트폰을 아이에 시선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는 것입니다. 물론 그 순간 아이는 더 울겠지만, 이렇게 계속 반복하는 것이 아이가 자신이 생떼를 부릴 때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다만, 아이들의 안정감에 중요한 애착인형만은 뺏지 않을 것을 권합니다.
Perspective taking (조망수용)
자신과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해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불화를 평화롭게 해소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아이는 아직 자신이 생떼를 부릴 때 부모가 얼마나 얼마나 힘들어하고 짜증 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떼를 부릴 때 부모의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아이의 조망수용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 능력이 발달할수록 생떼의 빈도도 줄어들게 됩니다.
Modelling - 나 자신이 아이의 롤모델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아이는 다 부모 보고 배운다고 하죠? 막상 아이가 생떼를 부리면 나 자신도 모든 게 짜증 나고 내 감정을 적절하게 소통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부모도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생떼를 부릴 때 소리를 지르면 그 순간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아이가 보고 배워 나중에 더 큰 소리로 생떼를 부리기 때문에 부모가 더 언성을 높여야 하는 악순환에 들어서게 됩니다. 따라서 부모가 우선 목소리를 낮추고, 아이가 따라 했으면 하는 생각을 말로 표현해 줍니다. "소리를 지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많이 속상했나 봐. 다음엔 조용히 말해야겠어." 아이가 만약 때린다면 "때리면 안 돼, 때리면 아파"라고 말해주며 내 생각을 확실하지만 차분하게 표현해 줍니다.
6개월 후, 30개월 검진에서 다시 볼 때에는 "Terrible Two"가 "Terrific Two"로 변신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See you in a bit!
image credit: Pixabay - Humpty22
reference:
1. Mount Sinai Parenting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