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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Feb 04. 2024

우리 아이 자폐인가요?

미국 영유아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18개월 차

18세에 청소년이 어른이 되듯이, 18개월에 아이라는 동물은 사람이 됩니다. 처음으로 "나"라는 개념, 즉 자아가 생기기 때문이죠. 그래서 거울을 보면 그 형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미 많은 발달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이제 달릴 수도 있고, 그림도 그리려 하고, 단어도 10개는 알고, 혼자서 밥도 먹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발달에 지연이 있는 아이는 확 눈에 띄게 됩니다. 그만큼 중요한 시기이기에 한국에서도 4차 영유아건강검진을 18개월-24개월 사이에 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선 9개월 검진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ASQ-3라는 검사도구를 사용해 정식으로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을 평가합니다. (아래 링크는 9개월 검진에 했던 ASQ-3 검사에 대한 내용을 제가 이전에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한국도 자체 개발한 K-DST라는 검사도구를 사용하는데, 대체로 검사 내용은 비슷해 보입니다.


https://brunch.co.kr/@91bdc393a9674fb/8



영유아건강검진 안내문.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위에 건강교육 항목을 보면 3차 영유아건강검진(9~12개월)과 차이점이 보이는데요, 대소변 가리기, 전자미디어노출, 개인위생 등의 새로운 항목들이 추가가 됐네요. 특히 요즘은 워낙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대중화되고 아이를 손쉽게 달랠 수 있다 보니 아이들이 전자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어 전자미디어 노출이 중요한 상담 포인트입니다. 다만 생후 18개월보다는 더 일찍 부모와 전자미디어 노출에 대해 상담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과다한 전자미디어 사용은 아이의 수면시간을 줄이고 비만의 위험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발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하죠. 아이는 사람과 놀이를 통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정상적인 발달을 하는데, 화면을 통해 일방적으로 정보만 받게 되면 발달에 악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미국소아과학회(AAP)에서는 18개월 이하는 전자미디어에 아예 노출시키지 않을 것을 권장하고, 18-24개월부터는 하루에 최대 한 시간, 그리고 발달을 촉진시키는 선별된 특정 미디어 프로그램 (한국의 EBS와 비슷한 느낌인 PBS라는 공영방송이 있습니다)에 노출시킬 것을 권장합니다 [1].



한국 아이 100명 중 많게는 4명이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다고 합니다


18개월은 처음으로 자폐증에 대한 검사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아이 100명 중 2명이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에 비해 한국은 정확한 수치는 없으나 적어도 100명 중 1-2명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많게는 4명 까지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2]. 이렇게 흔한 질환이다 보니 미국에선 18개월과 24개월에 모든 소아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폐증 전용 검사도구인 M-CHAT (Modified Checklist for Autism in Toddlers)를 사용합니다. M-CHAT은 20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3개 이상의 대답이 비정상이면 추가 질문을 물어보게 되고, 7개 이상이면 자폐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해 바로 정밀 진단을 위해 의뢰를 하게 됩니다. 반면에 한국은 일반 발달 검사인 K-DST만 4차 영유아건강검진에 사용하는데, 여기서 자폐증에 대한 질문 3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 그림이 K-DST의 자폐증 질문, 아래 그림이 M-CHAT입니다.

다만 검사도구인 M-CHAT이 그리 정확한 검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검사를 해도 약 60%의 자폐증 환자를 놓치고, M-CHAT에서 비정상이라고 나와도 그중 실제로 자폐증이 있을 확률은 20%가 채 안된다고 합니다[3]. 따라서 검사에서 비정상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자폐증을 진단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론적으로 일반 소아과 전문의가 문진과 오랜 관찰을 통해 진단을 내릴 수 있으나, 워낙 중대한 진단이다 보니 자폐증 전문 의료진이나 기관으로 의뢰해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폐증의 치료는 간단하지가 않은데요, 그러다 보니 소아과에서만 치료를 담당하지 않습니다. 자폐증 치료에 있어 미국 소아과의 역할은 확진된 자폐증 환자가 추후 정기검진을 받으러 올 때 자폐증에서 흔히 발견되는 다른 질환, 즉 ADHD, 불면증, 폭력성, 영양 불균형 등을 관리하는 것입니다[4]. 자폐증을 치료하는 약물은 없으나, ADHD나 불면증, 폭력성은 약물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적절한 몸무게를 위한 정기적 측정 및 교육을 제공하고, 익사나 독극물 섭취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육도 제공합니다.


자폐증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는 행동치료입니다. ABA (applied behavior analysis)라는 치료가 제일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3세 이전에 시작해야 치료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에 이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죠. 미국에선 주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폐증을 진단하고 관리하는 인프라가 있습니다. 제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Regional Center라는 주정부와 협약을 맺은 비영리 개인단체가 있는데요, 자폐증을 비롯한 발달장애 환자들을 돌보는 곳입니다. 소아과에서 자폐증이 의심되는 환자를 Regional Center로 의뢰하면 여기서 추가 검사를 통해 진단을 내리고 ABA를 비롯한 자폐증을 위한 치료 (언어치료, 작업치료, 사회화치료) 등을 제공합니다.


다만 ABA가 워낙 시간을 많이 요하는 치료여서 길게는 치료시간이 일주일에 40시간까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수년동안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치료전문가에 대한 수요는 높은데 공급이 부족해 모든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가 보는 환자 중에도 ABA therapy를 신청했지만 1년 가까이 대기를 해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폐증 환자를 돌보기 위한 공식 인프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자폐증이 어떻게 관리가 되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얼핏 보았을 때에 미국과 같은 공식 기관이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아 부모가 외롭게 알아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안타까운 실정으로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소외된 환자들을 위한 복지가 곧 나아지길 소망해 봅니다.



image credit: Pixabay - Mimzy


references:

1. Hill D, Ameenuddin N, Reid Chassiakos YL, Cross C, Hutchinson J, Levine A, Boyd R, Mendelson R, Moreno M, Swanson WS. Media and young minds. Pediatrics. 2016 Nov 1;138(5).

2. Pantelis PC, Kennedy DP. Estimation of the prevalence of autism spectrum disorder in South Korea, revisited. Autism. 2016 Jul;20(5):517-27.

3. Guthrie W, Wallis K, Bennett A, Brooks E, Dudley J, Gerdes M, Pandey J, Levy SE, Schultz RT, Miller JS. Accuracy of autism screening in a large pediatric network. Pediatrics. 2019 Oct 1;144(4).

4. Long M, Register-Brown K. Autism spectrum disorder. Pediatrics in Review. 2021 Jul 1;42(7):36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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