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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Jan 26. 2024

피를 뽑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미국 영유아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12개월 차

드디어 돌잔치를 하는 12개월입니다. 예전에는 영아사망률이 높아 돌잔치를 벌였다고 하죠? 1970년대 중반에만 해도 태어난 아이 1000명 중 28명은 돌이 되기 전 사망했지만, 2021년에는 1000명 당 2.4명만 사망했다고 하니, 50년 사이 영아사망률이 10배는 넘게 줄었네요 [1, 2]. 그럼에도 1살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이때가 아이가 첫걸음을 떼는 시기이기도 하니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축하의 기쁨도 가시기도 전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6개월 동안 백신에서 해방되었지만 다시 백신을 맞을 때가 왔기 때문이죠. 12개월 차 예방접종도 한국과 미국 둘 다 비슷한데요, 기존의 맞았던 사백신인 b형해모필루스인플루엔자 (Hib), 폐렴구균 단백결합 (PCV) 4차에 생백신인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MMR), 수두(Varicella), A형 간염(Hepatitis A)을 새로 맞게 됩니다. 미국과의 차이는 한국에선 일본뇌염 백신을 추가로 맞죠.


그나마 좋은 소식은 12개월부터 우유를 마실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쑥쑥 크기 위해 미국 소아과에서는 이때부터 우유를 마실 것을 권장하는데요, 다만 너무 많이 마실 경우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고, 배가 불러 골고루 다른 이유식을 안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에 500ml로 제한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진료하다 보면, 우유를 너무 많이 마셔 아이가 비만이 생기는 경우가 정말 흔합니다. 또한 이제는 전해질 조절도 잘하기 때문에 물도 예전에 비해 많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루에 1000ml까지도 괜찮다고 교육합니다 [3].


아이에겐 양날에 검인 우유입니다. 너무 많이 마시다가 진짜 연세대 (진료받으러) 갈 수도 있습니다. 출처: 연세우유


12개월 검진에서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은 이때 피검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헤모글로빈과 납 수치를 확인해 빈혈이나 납중독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영아는 생후 4개월이 되면 엄마에게서 받았던 철분이 다 떨어져 음식을 통해 섭취를 해야 되는데, 이유식에 충분한 철분이 포함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빈혈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린 나이에 빈혈이 있을 경우, 뇌에 전달되는 산소가 줄어들어 인지능력 저하를 초래한다는 염려가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4]. 납 같은 경우, 197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집은 페인트에 납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이가 집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페인트 조각을 입에 넣으면서 납에 노출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만성 납중독은 아이들의 뇌기능과 발달 저하를 일으키기 때문에 최대한 예방해야 하는 질병입니다 [4]. 이렇게만 보면, 미국도 하는데 한국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선, 미국도 무조건 빈혈검사와 납중독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빈혈의 경우, 미국소아과학회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혹은 AAP)에서는 12개월에 검사할 것을 권하지만 미국예방정책국특별위원회 (United State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혹은 USPSTF)에서는 권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습니다 [5, 6]. 빈혈이 인지능력 저하와 연관성만 있지, 실제로 원인이라는 증거는 아직 불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3세 이하 어린이 중 2%가 철결핍성 빈혈이 있다고 하니, 많다고 하기도 적다고 하기도 애매한 수치라 검진의 효율성도 논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AP가 소아청소년이 아닌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USPSTF보다는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기 때문에 빈혈 검사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납중독 검사는 지역적, 사회경제적 편차에 따라 위험도 편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 또한 전국적으로 무분별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뉴욕 같은 경우,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대다수의 건물들이 기본적으로 100년은 넘 게 오래되었기 때문에 뉴욕주는 납중독 검사가 필수입니다. 또한 저소득층을 위한 보험인 Medicaid 적용을 받는 아이들도 기본적으로 납중독 검사를 합니다 [4]. 미국 대학병원 소아과는 보통 저소득층 환자를 받기 때문에 저도 수련 중에는 항상 검사를 하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유하고 집이 비교적 신축인 지역은 굳이 검사를 하지 않겠죠.

뉴욕 브루클린 덤보. 납이 흘러넘치는 풍경입니다. 출처: Pixabay - Sebastian Vila


재미있는 것은 한국은 이제 대다수의 거주공간이 새로 지은 아파트이지만, 한국 아이들의 혈중 납 수치가 미국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연구대상 나이의 차이가 있어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미국 어린이의 납 수치 중간값은 1.15 μg/dL, 한국은 1.34 μg/dL였습니다 (납중독 기준치는 5 μg/dL 이상입니다) [7]. 그 이유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국사람들이 더 먹는 쌀이나 김, 생선을 통해 납에 노출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게다가 검사비용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빈혈검사 (Complete blood count, CBC)와 납중독 검사의 가격은 지역과 검사하는 기관에 따라 제각각이나, 미국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는 Quest Diagnostics라는 검사회사에 따르면 각각 29불, 49불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워낙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보니 이 정도 가격은 신경 안 쓰고 검사하는 것 같은데 한국처럼 자원이 제한된 나라에선 이런 검사를 전 국민 대상으로 실시하기는 쉽지 않을겁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미국 의료는 한국 의료에 비해 낭비가 심한 편이라 미국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두 나라의 보건방침 비교를 해보는 것은 재밌기도 하고, 왜 다른지 질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도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열심히 찾아봐도 우리나라 소아 중 몇 퍼센트가 빈혈이 있는지, 왜 한국 아이들이 납 수치가 더 높게 나오는지 신빙성 있는 연구결과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추가 연구를 통해 우리가 우리나라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mage credit: Pixabay - Belova59


references:

1. 한성현 P; 김일순 P. 우리나라 영아사망률의 최근 추세와 그 결정요인 분석. 한국역학회지, 1990, 12.1: 57-79. 

2. e나라지표.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69

3. https://www.healthychildren.org/English/healthy-living/nutrition/Pages/recommended-drinks-for-young-children-ages-0-5.aspx

4. Nelson Texbook of Pediatrics. 20e.

5. BAKER, Robert D.; GREER, Frank R.; COMMITTEE ON NUTRITION. Diagnosis and prevention of iron deficiency and iron-deficiency anemia in infants and young children (0–3 years of age). Pediatrics, 2010, 126.5: 1040-1050.

6. SIU, Albert L. Screening for iron deficiency anemia in young children: USPSTF recommendation statement. Pediatrics, 2015, 136.4: 746-752.

7. BURM, Eunae, et al. Representative levels of blood lead, mercury, and urinary cadmium in youth: Korean Environmental Health Survey in Children and Adolescents (KorEHS-C), 2012–2014. International Journal of Hygiene and Environmental Health, 2016, 219.4-5: 41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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