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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Jan 22. 2024

인생 첫 시험 치는 날

미국 영유아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9개월 차

30년 짧은 인생동안 여기까지 오는데 그동안 치른 시험과 받은 평가들이 몇 개인지 세어보려면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저의 첫 시험은 초등학교 1학년때 친 기말고사인데요, 그때부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점수라는 숫자에 얽매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린 사실 훨씬 더 어린 나이부터 평가와 점수를 받기 시작합니다. 우선 태어나자마자 소생술 여부를 판단하는 10점 만점의 APGAR라는 간이 점수를 받죠 (6점 이하 신생아는 통상적으로 신생아집중치료실로 이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 정밀하게 평가받고 처음으로 점수를 받는 경우는 발달평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생후 9개월에 첫 발달평가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 평가가 9개월 검진의 주요 목적입니다.


발달 지연을 일찍 발견하고 개입하는 것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 영유아건강검진에도 발달평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3차 검진을 할 때 발달평가를 진행합니다. 미국과 다른 점은 생후 9개월에 딱 맞춰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후 9-12개월 사이에 부모가 원하는 시기에 진행을 하게 됩니다. 9개월 차는 예방접종이 따로 없고 12개월에 여러 백신을 맞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하려고 생후 12개월에 3차 검진을 하는 부모님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시간 절약은 되겠으나, 만약 발달이 염려가 된다면 9개월에 좀 더 일찍 검진을 받는 것이 좋겠죠?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발달평가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미국에서는 ASQ-3 (Ages and Stages Questionnaire 3)라는 도구를 제일 흔하게 사용하고, 저희 병원에서도 이 도구를 사용합니다. 검사도구는 총 5가지 분야, 즉 언어, 대근육운동, 소근육운동, 문제해결 능력, 사회성에 걸쳐 평가를 하는데 9개월에 확인할 제일 중요한 분야는 운동(대근육과 소근육)과 수용언어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또한 9개월은 시력과 청력, 신경운동 장애 (대표적으로 뇌성마비)를 감지하는 적절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1] 한국도 이전에는 ASQ를 변형한 K-ASQ를 사용했으나 한국의 여러 학회들이 모여 독자적으로 K-DST (Korean Development Screening Test for Infants and Children)를 개발해 영유아건강검진에 적용했고, 이 도구가 ASQ보다 발달지연을 더 정확하게 구별한다고 합니다. [2] 아래에 두 검사의 언어 부분만 가지고 와봤습니다. 한국 검사도구가 더 많은 질문을 불어보고, 응답 옵션이 3개가 아닌 4개로 더 많은 것이 특징이네요.


위 그림이 ASQ-3, 아래 그림이 K-DST. 괜히 한국 시험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언어를 포함해 총 5가지 영역에 대한 질문을 답하면 각 영역마다 60점 만점의 점수가 나오게 됩니다. 각 영역마다 합격선이 다른데요, 하얀색은 합격, 회색은 주의, 검은색은 불합격입니다. 여기서 불합격이 나오게 되면, 환자의 지연에 따라서 추가 평가 및 치료를 하게 되는데, 소아과에서 직접 평가 및 치료를 하기보단 주로 소아신경과나 물리치료사 (physical therapist), 작업치료사 (occupational therapist), 언어치료사 (speech language pathologist), 청각학자 (audiologist) 등에게 의뢰를 하게 됩니다.

ASQ-3 9개월 점수표


물론 9개월 차 검진에 발달평가만 하지는 않습니다. 여느 Well Child Visit과 같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지 확인합니다. 또한 9개월 즈음에 일어날 수 있는 발달 과정에 대해서도 교육을 진행합니다. 크게 3가지를 다루게 되는데요.

- 이때 흔히 분리불안증 (separation anxiety)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내용 (의례의식 만들기, 일관성 지키기, 해어질 때 아이에게 온전한 관심 주기)을 다룹니다.

- 슬슬 젖병을 때고 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교육을 합니다. 젖병을 계속 물게 되면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게 돼 비만이 생길 수 있고, 이유식을 먹지 않으려 해 영양 불균형이 생길 수 있으며, 충치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생후 6개월부터 빨대컵 (sippy cup)을 주면서 젖병 사용하는 횟수를 줄이고, 생후 12-18개월 사이에 젖병을 완전히 끊고 컵만을 사용할 것을 권장합니다.

- 미국은 한국에 비해 집도 크고 가구도 많은데, 9개월이 되면 이제 아이가 슬슬 혼자서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옷장을 잘못 건드려 넘어져서 아이가 깔리는 사고 (tip-over injury)가 흔히 발생합니다 (미국에선 연간 18,000건의 사고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3]). 그래서 가구가 넘어지지 않도록 벽에 고정이 돼있는지 확인하는 등 사고 예방 교육을 진행합니다.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으면 다음 발달평가는 18개월 검진에 이루어집니다. 이때는 기존 발달평가에 자폐증 검사도 같이 하게 되죠.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후 12개월에 또 한차례 예방접종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3개월 후에 다시 소아과에서 보게 됩니다. See you in a bit!



image credit: Pixabay - Mitrey


references:

1.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0e.

2. CHUNG, Hee Jung, et al. Development of the Korean developmental screening test for infants and children (K-DST). Clinical and Experimental Pediatrics, 2020, 63.11: 438.

3. LU, Chang, et al. Furniture and television tip-over injuries to children treated in United States emergency departments. Injury epidemiology, 2021, 8: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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