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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지 Oct 17. 2024

아르코 발표 기금 발표작 1

그곳에도 저녁이 내려오는가

  

그곳에도 저녁이 내려오는가

  

공제 선의 나목이 뚜렷해지는 시간

단정한 봉분 셋

그 뒤 오목눈이 집이 있다

죽은 자들이 깨어나는 시간

무덤의 문을 지키는 어린것들에게 저녁을 물어다 주는 어미

  

방심한 사이 바지를 뚫고 살을 긁어대는 도깨비바늘을 떼어내며 듣는 새들의 소리

소리는 저녁을 불러 산기슭에 붉은 노을이 서성거리고

날개 죽지에 얼굴을 묻고 와글거리는 다정한 왁자지껄

바스락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깃털들

  

기운이 센 말을 찾으려고 책을 펴면 활자 위를 달려오던 혐오라는 말

혐오는 농로의 똥이 아니다

깊은 울음을 우는 갈밭 동면을 놓치고 죽은 뱀의 사체도 아니다

  

서로에게 적색분자인 그들의 세상에 피가 흘러내리지

총은 어디에 있는가 허리춤인가

등 뒤에 매달려 있는가

결코 낯설지 않은 얼굴끼리 방아쇠를 당기고 안전핀을 뽑고 미사일을 날린다지

 

내일을 두 눈 속에 묻고 묘지를 서성이는 발 없는 몸뚱이들

무덤을 지키는 새들이 쉴 수 없는 땅

뒤틀린 바람을 업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그곳

서로의 둥지를 폭파하는 밤을 키우려

소멸되는 평화가 주저앉아 울부짖는

그곳에도 저녁이 내려오는가

  

비행운 사이로 밥 짓는 연기가 올라간다

먹고사는 일이 가장 낮은 곳의 기도와 다르지 않고

피 흘려 일하나 돌아갈 집이 보이면

마냥 멀어도 안도하는 우리에게

저녁이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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