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다

숫자는 비명을 기록하지 않는다

by 이땃쥐

기준의 세상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눈에 사람들은 인격체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처리 속도와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가진 노드(Node)의 집합일 뿐이었다.

감정은 신호 전달을 방해하는 노이즈였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시스템의 효율을 저해하는 버그였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부터 이 거대한 시스템의 비효율과 마주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기준은 거대한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L&S 타워 1층 로비 한가운데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직원들의 무리를 관망했다.

그의 눈에는 무질서하게 흩어진 점들의 군집으로 보였다.

몇몇은 삼삼오오 모여 무의미한 잡담을 나누며 데이터 처리 용량을 낭비하고 있었고, 또 몇몇은 각자 다른 방향을 보며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얽혀 있었다.


'18초. 저기 저 무리가 3초만 일찍 비켜주었다면 다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던 직원이 최소 4명. 1인당 18초, 총 72초의 시간 손실. 이 회사 전 직원 3천 명에게 하루 평균 두 번씩 이런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하루에만 120시간의 잠재적 생산성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 셈이다.'


기준은 자신도 모르게 턱을 매만지며 최적의 해결책을 시뮬레이션했다.

바닥에 동선을 유도하는 라인을 그리고, 탑승 인원과 목적 층에 따라 대기열을 나누는 자동 분류 시스템을 도입하면 된다.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버그를 제거하면, 모든 것은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기준을 '차갑다' 혹은 '인간미 없다'고 수군댔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는 보고 있었다.

열정과 노력이 '비합리적인 결정'과 '비효율적인 시스템' 앞에서 얼마나 쉽게 재가 되어버리는지를, 그는 과거의 실패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밤을 새워 완벽하게 쌓아 올린 프로젝트가, 단지 담당 임원의 '감' 하나로 뒤집혔던 그날 이후, 기준은 인간의 감정을 불완전하고 위험한 변수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신은 세상을 완벽한 코드로 설계했지만, 인간은 그 위에 '관계', '기분', '정'과 같은 스파게티 코드를 덧씌워 모든 것을 망쳐놓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은, 바로 그 엉망진창인 코드를 정리하고 시스템을 최적화하여 본래의 완벽함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라 믿었다.


나는 컨설턴트나 구조조정 전문가가 아니다.

나는 시스템 외과 의사(Medical System Surgeon)다.

이 거대한 유기체의 어디에 비효율이라는 종양이 자라고 있는지 정확히 진단하고,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도려내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고, 나의 존재 이유였다.

감상이나 동정은 수술의 성공률을 떨어뜨릴 뿐이다.


"기준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한 직원이 인사를 건넸지만, 기준의 눈에는 그의 얼굴 대신 '인사 처리에 0.8초, 감정 분석에 1.2초 소요'라는 데이터 태그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짧게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응답을 대신하고,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닫히는 문틈으로 로비의 혼잡한 풍경이 다시 한번 보였다.


기준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 무질서하고 비효율적인 세상은, 곧 자신의 손을 통해 완벽한 질서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이 거대한 시스템의 버그를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설계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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