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오해 한다

부안 솔메길 73-5

by 김현주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주무시는 고향집

김재곤 최영열 님의 집인 것을 문패는 말한다

그 집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눈을 뜨면 밖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을 열고

기상캐스터라도 된 양 그날의 날씨를 말씀하신다

밤새 흰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는 것도 그래서 알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아지가 살았던 개 집 지붕 위에도

눈이 보기 좋게 쌓였다

부지런한 고양이가 두엄자리를 뒤져 생선가시라도 얻을 양으로

살금살금 걸어왔는지

발자국이 귀엽게 찍혔다


이제는 살림을 멀리하는 어머니의 장독대위와

화단이랑 텃밭이 뒤섞인 마당을 덮은 눈이 눈부시다

그 와중에도 삐죽삐죽 눈 위로 내민 마늘 싹이 기특했다

문득 땅에 묻은 항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 퍼 담았던 살얼음 동 동 동치미의 쨍한 맛이 생각났다

눈 내리는 날에 유난히 맛이 더 났던 것 같기도 했다

눈 더미에 묻어 두었다 깎아 먹었던 고구마 맛도 생각났다


앞산 소나무에 걸터앉은 눈은 해가 모습을 드러내면

소나무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산의 정상에 올라앉은 정자가 가깝게 다가왔다


어릴 적 눈 치우던 습관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고 길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인천에서는 올 겨울 이런 눈을 구경 힐 수가 없었던 터라

눈을 보니 기분이 좋았고 의욕적으로 눈을 치웠다


옛날에는 물 항아리였고 쌀 항아리였을 것들이

쓰러져가는 초가집 모퉁이에 입을 크게 벌리고 기우뚱 쓰러져있었다

문패 대신 개조심이란 글씨가 그나마 선명한 색 바랜 대문이

지킬 것도 없는 빈 집을 지키겠다고 굳게 닫혀 있었다

당연히 눈 치울 사람도 많지 않아

동네 누구라도 치워야 할 눈이 많아졌다

해를 받은 눈은 작은 보석이라도 뿌려 놓은 듯 반짝였다

금세 땀이 났다


제법 걸어온 나도 나이가 쉰이 훌쩍 넘었다

내일이면 팔꿈치 어디쯤이 아플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내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을 느끼기도 하니까


노인이 자주 찾는 마을 회관 가는 길을 닦으려

나는 길 모퉁이를 돌아 언덕배기까지 눈을 치운다

회관으로 향하는 제일 빠른 길이 언덕배기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딸이 아침 일찍 눈 치우는 게 몹시도 안쓰러웠는지

미끄러운 눈길을 겁도 없이

치매 앓는 노모는 딸 찾으러 나왔다

제발 쓸어 좋은 길만이라도 온전히 눈이 녹기를 바라며

친정어머니의 팔을 단단히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에는 눈 위를 뒹구는 개도 없었고 짖는 소리도 없었다

눈 치우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른 아침을 깨우던 꼬끼오 소리도 자취를 감춘 모양이다


노인이 혼잣말을 했다

동네가 썩게도 생겼다고


우리 딸이 길을 냈다고 마을 회관에 가면 자랑하실 것이다

딸이 친정에 와서 일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길을 내주니 고맙고

어쩌다 별게 아닌 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며칠 후 또 눈이 왔고

난 또 눈을 치웠고

어머니는 또 딸 꽁무니를 쫓아왔고

동네는 썩게도 생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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