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 뽀개기
설이 한 주 남았다. 어김없이 명절 증후군이 찾아왔다. 기운이 없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영부영 주부 34년 차니 맷집이 생겼을 법한데 아니다. 눈치 빠른 딸은 “가까운 곳에서 쉬고 올까?”라고 물었다. “좋지. 어디로 갈까?” 딸의 여행 제의는 언제나 오케이다. 몇 군데 후보를 저울질했다. 지난 연말에 보문사랑 근처 노천탕을 다녀왔었다.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고 풍경이 아름답다는 동검도를 그냥 지나쳐 온 게 생각났다. 둘은 그 섬에 가기로 했다.
가끔 상냥한 딸이 운전기사를 자청했고 모든 계획은 그녀 몫이다. 매번 그렇듯 나는 설렘만 준비하면 된다. 둘이 경주며 원주 뮤지엄 산, 전주 영화제 등 꽤 많이 다녔었다. 여행 궁합은 좋다. 초지 대교는 강화도 본섬과 동검도를 이어주었다. 고립과 거리가 먼 이름만 섬인 셈이다. 가는 도중에 진눈깨비를 만났다. 어쩌면 설경을 덤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DREF 예술극장’에 도착했다. 세시 영화를 예약했는데 식사 시간이 빠듯해 그곳에서 점심까지 먹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급하게 식사 예약을 마치고 들어갔다. 식재료 여유분이 없었던 것인지 예기치 않게 주방장에게 혼이 났다. 손님이 이런 핀잔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아무리 예약제 식당이라지만 푸대접이 낯설었다. 멋쩍었지만 2층으로 안내하시는 분의 친절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담쟁이넝쿨이 무성한 철에는 제법 분위기가 있을 건물이었다. 제멋대로 자라는 개성 있는 화초가 무심하게 놓여있었다. 남자 셋이 운영하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달랑 하나 가동되는 온풍기는 유리창 틈새로 들어오는 웃풍을 감당하기에 버거워 보였다. 바깥 풍경을 가까이 보려고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빛바랜 철지난 갈대가 허리를 꼿꼿이 세운 모습으로 흔들렸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도 넓게 드러나 있었다. 메뉴는 두 가지로 단출했다. 곤드레나물밥과 달걀이 곁들여진 함박스테이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이며 영화 포스터를 훑어보았다.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따뜻하게 먹었다. 세시 정각이 되자 유 감독님은 우리를 불렀다. 사오십 좌석의 영화관에 관객 네 명이 앉았다. 유 감독은 현란하게 전자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비정전 OST다. 느닷없이 장만옥과 유덕화, 맘보춤을 추던 장국영을 떠올렸다. 그들의 화양연화가 눈앞에 그려졌다. 열정적 연주에 큰 박수로 화답했다. 하지만 이내 창밖 풍경이랑 어울리는 쓸쓸한 감성이 돋았다. 아비의 일대기에는 흡사 장국영의 허망한 죽음을 예고라도 하는듯한 대사가 있다. ‘다리 없는 새가 살았다.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다. 이 새가 땅에 닿는 날은 생애에 단 하루 그 새가 죽는 날이다.’ 그가 떠난 날은 만우절이었다. 참 믿기 힘든 일이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발 없는 새가 된 그가 둥지를 튼 그곳에서는 제발 행복했으면 좋겠다. 상영된 영화는 1960년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고 1961년에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이탈리아 영화 ‘아름다운 안토니오’다. 화면은 떨리고 비가 내렸다. 영화 보는 내내 알랭 들롱을 닮은 주인공 얼굴을 감상했다. 남녀의 플라토닉 사랑만으로는 부부가 될 수 없다는 줄거리다. 남성성을 상실했을 때 겪게 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을 읽었다. 딸은 다소 실망한 눈치다. 직원 힘드니 셀프입니다. 화장실 휴지 아껴 써 주세요. 힘듭니다. 여기저기 운영이 힘들다고 읍소하는 메모가 있었다. 1인 식사비가 2만 원이고 관람료가 2만 원이면 후원금으로 일조한 것도 같다. 예술은 힘들구나.
숙소에서 쉬고 싶어 내비게이션을 켰다. 날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빠른 길만을 찾았나 보다. 구부러진 골목과 산비탈을 지나는 길은 진눈깨비가 녹아 질척한 흙길이 되어있었다. 일찍 도착했는지는 몰라도 바퀴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주차를 도와주시던 주인아저씨는 “해안도로로 왔어야 했는데…”하시며 미리 안내 못해 준 것을 미안해했다. 커튼을 젖히며 어느 쪽으로 해가 지고 어느 쪽으로 해가 뜨는지 보이는 다리는 영종대교이고 야경이 멋지다고 ‘해누리펜션’의 뷰를 자랑하셨다. 그럼에도 오늘의 석양과 내일 아침의 일출은 포기해야 할 날씨다. ‘꽃새랑’에 게장 비빔밥과 해물 부추 전을 미리 주문했다. 찾으러 가는 길에 눈발이 조금 날렸다. “눈이 많이 오지요?” 젊은 사장님은 상냥하게 맞았다. 전을 피자 상자만 한 것에 담으며 “작아 보이죠? 저희가 상자 주문을 잘못해서 그래요.” “배달할 때는 달걀찜은 안 드리는데 챙겨 드릴게요.” “게장 양념이 넉넉하니 밥 한 공기 더 필요 하실 겁니다. 넣어 드리겠습니다.” 저녁을 조금 먹을 생각에 “아니요, 괜찮습니다.”하고 대답했지만, 밥 한 공기를 꾹꾹 눌러 담아 주었다. 포장을 풀어 밥을 먹는데 게장 양념에는 밥 두 공기가 필요했다. 공짜 밥을 안 받아왔으면 서운했겠다. 친절한 마음과 배려가 느껴졌다. 양념은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했다. 게장은 역시 밥도둑님이시다. 우리는 널찍한 더블 침대를 쉬게 하고 뜨끈한 바닥을 선택했다. 마주 보고 자고 싶었지만, 나의 코골이가 딸의 잠을 방해할 것 같아 등 돌려 거리 두고 자기로 했다. 나는 아주 잘 잤다. 옆에서 자는 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움직였다. 커튼을 살짝 젖히니 밤새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뒷산 경치를 보기 위해 블라인드를 올렸다. 수묵화 한 점이 걸려있었다. 인천 시내의 하늘은 눈 인심이 야박해 눈 오는 날이 잦지 않은 터라 설경이 반가웠다. 2024년 1월 21일은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 눈이 와 눈 구경 간 지인도 있고 함백산이며 발왕산 등산 계획이 있었는데 우연히 설경을 영접한 지인들도 있었다. 이런 눈은 처음이라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 폭탄을 받았다. 나는 배가 아팠다. 겨울 여행은 남도 여행이라는 친구 말에 그즈음 거제 여행을 계획한 나는 완전 감이 없는 사람이다. 당시 날씨는 몹시 추워 철원 체감기온이 영하 30도였다. 이불 같은 옷을 입고 남도로 내려갔다. 거제 역시 추웠지만 고드름만 보였다. 눈이 귀한 동네다. 따뜻한 날 피었던 동백꽃이 얼어버린 모습으로 나무에 겨우 매달려있었다. 추위에 강한 매화를 본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설경이 고팠었는데 동검도의 눈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퇴실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저마다 눈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배웅하시는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언덕을 내려갈 때까지 손을 흔드셨다. 물론 훌륭한 후기를 부탁하셨다. 일본 유후인의 민박집 주인 할아버지의 배웅하는 모습이랑 겹쳐 보였다. 그분들의 속마음을 짐작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훈훈했다.
‘채플 갤러리’를 찾았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성소는 아담하니 예뻤다. 하얀 눈을 밟으며 채플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고귀하게 여겨졌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창밖 경치가 우릴 맞았다. 실내는 조광호 신부님의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로 채워져 있었다. 멀리 마니산이 눈앞으로 달려왔다. 이 추위에 천 조각 하나 두른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의 고통과 마주했다. 가시면류관을 닮은 산사화 한 그루가 마음을 흔들었다. 꽃말은 ‘유일한 사랑’이다. 싱잉벨의 울림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파동이 가슴을 웅장하게 했다. ‘사진만 찍지 마시고 단 1분 만이라도 명상에 잠겨 보세요.’라는 당부의 메모는 괜한 수고였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고요와 침묵, 경건에 젖어 스며들었다. 갤러리에 전시된 유리화는 화려해서 빛이 있는 날이었다면 비상했을 것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위로가 필요하신 모든 분께 권하고 싶은 곳이다. 나 역시 이번 여행의 백미로 꼽은 장소이기도 하다. 동검도의 제1경으로 저장한다.
황산항 데크길로 향했다. 발자국 꾹꾹 눌러 찍으며 뽀드득 소리에 취해 걸었다. 까마귀가 옆에서 깍 깍 배고픈 소리를 했다. 흉내 냈더니 친구인 줄 알고 두리번거렸다. 미안하기도 우습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낚시하지 마세요.’ 플래카드 두 장이 펄럭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낚싯대 몇 대를 던져 놓으신 강태공 한 분이 계셨다. 나 여기 있다고 광고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무신경한 것인지 노랫소리가 컸다. 해경의 기습 단속에 무사 하실지 그분의 오늘 운세가 살짝 궁금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꼭 말 안 듣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나저나 까마귀도 배고프고 나도 배가 고팠다.
정원 식탁의 문어덮밥은 싱싱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돈가스 역시 바삭하고 소스의 풍미가 입맛에 딱 맞았다. 실내 인테리어도 근사했다. 부부로 보이는 사장님의 헐렁한 복장과 냉랭한 분위기, 고장난 화장실 세면대는 음식과는 별개로 아쉬운 뒷맛을 남겼다. 두 분 화해하시고 고장 난 것은 바로바로 수리 하세요. 그 옆집 ‘숲길 따라 카페’로 올라갔다. 통창으로 작은 섬들과 갯벌을 드러낸 바다가 시원하게 보였다. 높은 층고와 야외 테이블은 여름과 더 잘 어울리겠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꺼내 몇 편의 시를 읽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잠이 들었다. 카페에서 이런 달콤한 쪽잠을 자다니! 특별한 휴식이었다. 노트북으로 열심히 돈 벌고 있는 딸을 물끄러미 보았다.
평일 여행이라 돌아가는 길이 퇴근 시간이면 곤란하다. ‘금품 양조장’이 가는 길에 있다며 막걸리를 사자고 딸이 말했다. 걱정되는 시간이 다가왔지만, 설득당했다. 기사님은 왕이다. 정말로 가는 길옆인 줄 알았다. 꽤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인천시 등록문화재로서 100년 된 옛 모습을 유지한 건물이다 보니 박물관 느낌이다. 막걸리도 옛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 무첨가 제품이라고 직원은 강조했다. 대를 이어받은 젊은 경영주일지도 모르겠다. 자긍심이 보였다. 도수가 다른 네 종류의 술 시음을 했다. 낮은 것부터 시작했는데 술맛은 잘 모르지만, 기품 있는 맛이었다. 품평회에서 인정받은 술맛이란다. 취기가 올라왔다. 방송에 소개되었는지 연예인 친필 사인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음색이 매력적인 가수 김필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동행 못 한 남편을 챙기면서 내 입맛에 맞는 도수의 술을 골랐다. 200년이 되어도 이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술레길투어로 제격이다.
역시 길이 막힌다. 명절 장 보는 차에 퇴근 차량이 몰려 도로를 메운 듯하다. 여행은 다시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낯선 것들과 마주하기다. 남편은 막걸리를 들고 온 우리를 뜨겁게 환영했다. 장수막걸리 급의 술만 아는 그 분은 비싸다고 하면서도 좋은 내색을 숨기지 못했다. 어떤 술부터 마실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저리 좋을까? 남겨서 부안에 가져가고 싶어 했다. 동검도는 동쪽 검문소라는 곳이었다. 설맞이를 거뜬히 할 수 있는 충전된 에너지가 있는지를 검문받은 느낌이다. 기분 전환은 확실히 됐다. 명절 증후군 뽀개기 성공이다. 이번 나들이는 명절 후유증 퇴치용 백신 역할도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전라북도 부안 시댁 가는 길은 예상처럼 막혔다. 일곱 시간이나 걸렸다. 차례 준비로 부산했고 돌아서면 밥하고 치우기를 하며 4박 5일을 보냈다. 친정이 사라져 버린 고아 신세라 시댁 체류시간이 길어졌다. 연휴 마지막 날 새벽 두 시 반에 출발해 4시간 만에 인천 집에 도착했다. 막힘없는 도로를 밤중 운전한 기사님도 수고 많았다. 명절 끝에는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시차 적응이 어려웠었다. 예방접종을 제때 한 덕인지 그런 후유증이 없었고 피곤이 덜했다. 아참, 남긴 막걸리는 집에 있던 안동소주랑 부안에 데리고 가 나눠 마셨다. 구순이 다가오는 시어머님도 시원하게 한잔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동서는 동검도 여행을 부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