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오해 한다

속앓이

by 김현주

“참아야 한다.”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착한 사람은 그래야 하는 것처럼 강요당했다.


속상해도 참았고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았다. 울면 울보가 되었다. 고래고래 하소연하면 고약한 성질머리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들을 더 챙기는 부당한 대우도 참았다. 생선 가운데 토막이 매번 막내 앞에 놓였다. 터울이 있었던 늦둥이 동생이 약하기도 했지만

“버릇 나빠지게 왜 그러는데?” 했던 기억이 있다.

‘먹는 것 앞에서는 조금 용감하긴 했나?’

그 힘인지 동생은 어버이의 자랑스러운 의사 아들로 성장했다. 하기 싫은 가을 운동회 부채춤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척했다. 가을볕은 엄청 뜨거웠고 몸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었다. 물론 선생님의 칭찬은 들었다.

“우리 아무개는 춤은 못 춰도 열심히 해서 기특하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전주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렸었다. 고등학교 1, 2학년이 모두 모여 공설운동장 땡볕에서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궐기라도 해야 했는데….’ 싶다.

그랬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전두환, 이순자 앞에서 틀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 기억이 있다. 안팎으로 그렇게 살다 보니 속앓이하며 울기도 뚱하기도 끙끙 앓다가 마음이 곪기도 했다. 어머니는 뚜데 하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말 없는 불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왜 그러냐?”

묻기는 했지만 이미 나를 표현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성격이 되어버려 유야무야 넘어갔다. 쌓인 욕구가 있어도

‘무던하게 넘어가야 하나보다’

하며 살다 보니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얌전하다는 말로 포장되기도 했다.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네”

“네”

차츰 얌전한 며느리라는 호칭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어영부영 결혼 34년 차가 되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남성 호르몬이 나온다고 했던가? 조금씩 씩씩해지고 말이 강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장이나 의사 표현이 확실해졌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34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과 우여곡절들이 쌓였겠는가?


남편의 그늘이 친정 부모보다 편할 것 같아 결혼을 결심했는데 착각인 줄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짐만 더 늘었다. 아이들 양육에서도 부모들의 양육 태도와 크게 다르지 못했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 성향도 나랑 비슷해 보였다. 참 다행스럽게도 나보다는 훨씬 나은 성인이 되었다. 한 놈은 33세에 결혼해서 독립하고 34세의 딸 녀석도 내년에는 갈 듯하다.

‘더 홀가분해지겠다.’

벌써 행복하다. 전우애로 다져진 맷집은 남편을 객관화할 수 있어서 편하다.

‘숨 잘 쉬고 있으면 다행이다.’

여기며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

‘나이 들어가는 편안함이 이런 거구나’ 깨닫는다.

알을 깨고 나오는 해방감과 후련함이랄까?


89세의 시어머니는 지방에 계신다. 에너지 넘치고 당당하시다. 농사일도 거침없이 잘하셔서 어머니의 밭에는 항상 건강한 채소가 무럭무럭 자랐다. 용돈벌이도 하신다. 로컬 푸드 회원 자격으로 채소 납품도 하시고 마늘 농사와 김장 김치 장사로 두둑하게 연봉도 챙기신다. 건강하시니 좋다. 75세와 89세에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노년의 건강은 최고의 복이다. 시어머니는 음식 솜씨 또한 좋으시다. 어머니 댁에 내려가면 조수 노릇만 해도 무난하게 지내다 올 수 있었다. 바리바리 싸주시기까지 하니 그 음식은 며칠 식량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용돈을 두둑하게 드린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특히, 앞으로 점수 따고 뒤로 왕창 잃는 사람이 있다. 시어머님이 그랬다. 마음 상하게 하는 말씀을 곧잘 하시는 것이다. 영리하신 어머님이 어떤 계산을 하고 말씀하신 것인지를 분석할 때가 있었다.

“종합검진을 큰 병원에서 하고 싶으니 올라가야겠다.” 하셨다.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 가는 길이었다. 남동IC도 채 넘어가기 전,

“아범이 시골에 안 내려오는 것이 니가 붙잡아서냐?”

“니가 붙잡아서지?”

분명 진지한 표정이었다. 확인이라도 하시려 했는지 두 번이나 물으셨다.

‘이해 안 되는 엉뚱한 질문이네? 황당하네? 퇴직해 시간 많은 아들이 엄마 보러 자주 내려가지 않는 것에 며느리 탓을 하시다니!’

생각 못 한 물음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 나이에 남편이 얼마나 필요해서 붙잡을 거로 생각하시지?’

몇 초 동안 어이없음이 쏟아졌다. 기가 막혔다. 예전의

“네”

“네”

하던 며느리라고 여기셨던 걸까? 하지만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아범이 일 년 살이 하러 내려간다고 해도 잡지 않을 사람인데요?”

“참나. 무슨 말씀하세요? 어이없네요.”

씩씩대며 대꾸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렇게만 한다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사람에게 저런 말씀을 하신다니. 저의가 무얼까? 하실 말씀이 없어서 심심해서 하신 말씀은 분명 아닐 텐데….’ 차에서 내리고 싶었지만

‘조금 참자.’ 했다.

아쉽지만 무슨 답이라도 기대했다.

“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셨다.

‘무슨 상황이지?’

하면서도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연세 있으신 어머님이 조금은 안쓰러워

‘그래 일단 착한 며느리 노릇을 마치고 상황 정리하자.’ 했다.

하지만 앙금이 쉽게 가셨을 리가 없다. 말끝마다 청개구리처럼 삐딱하게 굴었다. 의무는 다했으니 전세 역전이다. 눈치 보시는 모습이 고소했다.

‘며느리가 이렇게 큰 줄 모르셨겠지? 말대꾸가 바로 나와 내심 놀라셨을 거야.’

그래서일까? 서둘러 내려가셨다. 어머니 말씀에 무슨 저의가 있는지를 남편에게 물었다. 포화를 쏟아냈다.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본인이 내려가기 귀찮아 안 내려가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고 현장에서 직접 들은 가당치 않은 물음에 딱히 할 말이 없었겠지?’

쏟아내고 나니 후련했다.


어머님은 얼굴 보고 하실 말씀을 찾지 못했는지 내려가셔서 전화하셨다.

“이제 너에게 농담도 못 하겠다?”

“괜한 소리했다고 미안하다.”가 아니었다.

“농담이라고요? 네?”

‘귀를 의심했다. 농담의 뜻을 모르시는 건 아닐까?’

순간 생각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아범이 어머님이랑 살겠다고 내려간다고 하면 저는 안 따라가도 응원하는 사람이에요.”

내 목소리를 한 번 더 확실히 냈다.

‘각오하세요. 이제부터는 말대꾸도 다 할 거니까.’

“하하”

또 대충 넘기신다. 더 각을 세우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남편에게 다 쏟아 내고 난 후라 남아 있는 화가 없었나 보다. 지금도 그분의 저의는 오리무중이다. 그렇다고 굳이 들추고 싶지도 않다.

‘아들이 보고 싶으시면 아들에게 내려오라고 직접 얘기하면 되는데 왜 며느리 팔이 하시나요?’

큰소리로 얼굴 붉히지 않고 차분하게 먼저 물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물음에 단호하게 바로 대처했던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잘했다.

‘어머님도 반성하셨겠지?’

뜨거운 소통의 시간이었다.


속앓이는 쓰레기통으로 보내기로 한다.

‘어떤 것이든 안 좋은 감정이나 생각들은 빨리 털어 내고 정리하는 게 정답이지.’

상처 주는 말에 체하지 말아야 한다. 끙끙 곱씹을 일이 아니다. 할 말은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나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시어머니와의 에피소드를 지인들과 신나게 떠들어댔다. 시원했다.

‘어머니 귀가 한동안 근질거리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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