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오해 한다
‘찌릿찌릿’
무릎이 이상 신호를 보냈다.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고 있다는 메시지였으리라. 매사에 예고 없는 일이란 없다. 다만 전조 증상을 무시하는 태도가 사태를 키울 뿐이다.
얼마 후, 이번에는 무릎이 소리를 냈다.
“뚝 뚝”
‘이거 뭐지?’
‘별거 아닐 거야. 어쩌다 난 소리겠지?’
그래도 조심해야겠다는 의식은 있었다.
‘물걸레질은 무조건 무릎 꿇고 해야 제맛이지.’ 했는데 이제 안 하기로 했다. 편했다. 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50대 나이에 벌써 고장 날 일은 없겠지?’
닳고 무력해지는 몸의 유효기간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인들이랑 진천 농다리를 갔었다. 하늘은 맑고 바쁜 것 없는 조각구름이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쉬어갔다. 미호천 옆에서 토종밤이 속을 내 보이고 있었다. 아무나 주인이어도 좋으니
“나 좀 데려가 주세요!”
외치는 날이었다. 전망대 정자에 오르기 위해 낮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오른쪽 무릎이 꺾이더니 바닥에 닿았다. 처음 겪는 일은 언제나 당황스럽다. 깜짝 놀랐다. 통증은 없었지만, 고장이 확실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서둘러 의사를 찾아야 했으나 어리석게도 통증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찾는 일을 미뤘다. 나름 무릎에 좋은 수영은 했다. 하지만 오금이 아파 걷는 게 불편해 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통증은 두뇌가 만든 친절한 신호다. 정형외과랑 통증의학과를 다녀야 했다. 염증과 관절 노화를 진단받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대 의학의 힘은 의지할 만했다. 고장 난 무릎을 보듬고 달래가며 써야 할 나이가 된 것을 인정해야 했다. 김밥이나 고기, 우유의 소비기한이 있는 것처럼 내 몸의 연골도 사용 한계가 있다는 것을 왜 생각 안 하고 산 것일까? 항상 문제없이 살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허리며 무릎에 좋은 스트레칭이나 걷기, 수영을 적당히 해야 한다.
안 좋은 습관이 불러온 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심히 걸으며 살았다는 훈장이라 생각하고 싶다. 언제까지 젊은이로 남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몸도 마음도 챙겨가며 여유 있게 나이 들어가야겠다. 복숭아가 다디단 과즙을 품고 익어가듯이 나도 그렇게 잘 숙성되어 가야겠다. 나이 듦을 인정하고 더 이상 나를 오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