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어라 솔자야
2016년 38%의 최고시청률에 올랐던 KBS 드라마가 있다.
바로 송중기 송혜교 주연의 "태양의 후예"이다.
물론 이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시청자들의 긍금증을 자아내는 드라마 속 아름다운 배경도 시청률을 꿀어올리는데 한몫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경우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바빠지는 곳이 있다.
바로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곳을 여행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곳 바로 여행사이다.
그러나 성공은 발 빠르게 움직이지 자의 몫이다.
내가 다니던 1등 여행사가 첫 번째로 그 상품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태양의 후예를 열혈 시청한분들이라면 드라마 속 유시진 (송중기)이 강모연 (송혜교)을 데리고 간 그 섬에서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며 그 섬이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곳은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히며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자킨토스섬의 나바지오해변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 아름다운 곳을 수없이 다녀온 나조차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곳이 궁금해졌다.
그런 나에게 "태양의 후예 촬영지탐방"이라는 그리스일주상품 이 첫번째로 배정되었다.
드디어 태양의 후예 드라마 속 그곳을 대한민국 첫 패키지인솔자로서 다녀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라마의 인기 때문일까?
첫 팀으로 모객 된 인원은 무려 38명이나 됐다.
그리스에 직항이 없어 튀르키예수도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상품이었으나 가격 또한 저렴하였기에 여행상품의 인기도 드라마만큼 흥행했다.
어느 나라든 첫 팀을 나간다는 것은 인솔자의 부담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설레는 마음으로 출장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38명라는 많은 인원이 터키를 경유하여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다.
우리 팀에 배정된 그리스현지 가이드분도 예전에 함께 행사한 적이 있는 분이라 한국에서부터 여러 가지 선물도 준비해 갔다.
그러나 아테네공항에 도착해 가이드분을 만나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그리스 선박회사가 48시간 총파업을 결정하여 내일 자킨토스섬으로 가는 유람선 이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행일정표 약관에는 천재지변, 재난, 등등으로 어쩔 수 없이 계약한일정을 진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 대체일정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머리는 복잡해져 갔다.
현지 여행사는 한국을 대표해 나온 인솔자의 의견대로 진행을 한다. 그만큼 나의 결정은 중요했다.
그냥 평상시대로 손님들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내일 대체일정을 진행할지 아님 자킨토스에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처럼 대체일정으로 바꾸기에는 이 일정을 선택한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자킨토스섬은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나의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또한 길지 않았다.
48시간 파업이라면 내일 자킨토스섬에 가는 일정을 파업이 끝나는 3일째 일정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일정을 맞바꾸면 예약한 모든 호텔과 식당을 캔슬하고 다시 잡아야 하는 여행사의 경제적 대미지가 컸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3일째 되는 날 선박회사가 파업종료를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는 나머지일정이 또다시 꼬여버릴 수 있다는 최악의 경우도 생길 수도 있다는 무리수도 있었다.
나의 결론은 손님들께 결정하실수 있는 기회를 드리자였다.
물론 공항에 막 도착한 이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어 첫날의 고린도 일정까지 망치게 해 드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지금의 상황을 말씀드리기로 했다.
나의 예상대로라면 장거리비행으로 피곤하셨을 텐데 38명의 손님들은 하루종일 기운이 펄펄 넘치셨다. 첫날일정은 즐거웠고 호텔에서 진행되는 저녁식사까지 행복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결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하루종일 마음 조였던 나는 드디어 상황을 설명드렸다.
예상대로 내일 자킨토스섬일정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원성이 쏟아졌다.
왜 아침에 공항에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 미리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파업사실을 알지 않았냐, 자킨토스섬을 가지 않는다면 다른 일정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보상을 받겠다.
심지어 나보다 한참 어린 20대 손님에게 욕설을 듣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행경험이 많으신 어르신의 한마디에 모두들 질책을 멈추시고 나의 상세한 계획을 들어주시기 시작하셨고 내일 일정과 3일째 일정을 바꿔서 진행하는데 동의하셨다.
다음날 아침 손님들 모두에게 일정변경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3일째 일정인 작은 시골마을 아라호바일정을 대신 진행했다.
이제 바라는 것은 선박회사의 파업이 약속대로 3일째 아침 6시에 끝나기만을 바라는 일밖에 없었다.
세 번째 날 아침이 되었다.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던 나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드디어 아침 6시에 선박회사 파업이 종료된다는 가이드분의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38명의 손님들은 뛸 듯이 기뻐하셨다.
욕설을 하던 20대 손님도 나에게 사과를 하며 기쁨을 함께했다.
드디어 자킨토스섬 나바지오해변의 첫 한국패키지여앵단의 입성이 이루어졌다.
나바지오 해변에 가까워지자 멀리 난파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아름다운 해변에 녹슨 난파선이 떠있는 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알고 보니 1980년 튀르키예에서 불법으로 밀수품을 싣고 오던 배가 그리스해군의 추격을 받는 과정에서 바위에 부딪혀 이곳으로 떠밀려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송송 커플의 달콤한 키스신이 있었던 장소여서인지 그마저도 낭만적인 장소로 느껴졌다.
나는 녹슨 난파선에 "태양의 후예 탐방팀 1기 다녀가다"라는 글자를 남기고 이틀간의 막중한 책임감을 그제야 내려놓았다.
그 후로 한 번 더 나바지오해변에 갔다.
다행히 두 번째는 선박회사의 파업 없이 무사히 다녀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드라마 이후 결혼한 송송 커플이 허니문여행으로 떠난 비행기에 함께 타기도 했다.
두 주인공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 두 사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늘 선택의 여정이다.
예전 mbc 일밤의 한 코너였던 인생극장처럼 우리는 양자택일의 순간을 수없이 맞이하게 된다.
나 또한 깊은 고민 끝에 "그래 결심했어"를 외쳐야 하는 많은 순간들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인솔자의 삶 속에서 때로는 힘겨워하며 고민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들을 이제 추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 도 그 보상은 충분하다.
다만 안타까운 소식은 최근 나바지오해변의 난파선이 강한파도와 여러 기후영향으로 그모습을 잃어가고있다고 한다.
그때 나의 현명한 결정이없었다면 38명손님들과 나또한 나바지오해변은 끝내 가보지못한 안타까운 여행지로 남았을것이다.
인솔자로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늘 용기와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러나 신께서는 나에게 늘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주셨고 일어날 수 있는 의지를 주셨다.
내가 살아가는 앞으로의 인생 또한 그러할 것이다.
또 다른 그 길 또한 굳세게 걸어갈것이다.
"굳세어라 솔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