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날로그 인솔자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거기에 돈까지 버는 사람!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직업군이다.
나의 직업은 해외를 누비는 TOUR CONDUCTOR(해외여행인솔자), 바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버는 여자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시선을 받은 건 아니다.
1996년 처음으로 전문인솔자를 시작할 무렵에는 인솔자가 패키지여행에 동행한다는 건, 말만 하면 뭐든 다 해결해 주는 일꾼하나가 따라가는 것이라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손님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도 다양했다.
미스 *~ 어이 가이드~ *양 ~ 언니~ 등등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여행을 많이 다니셨었던 손님들은 국내가이드분들께 그렇게 호칭하셨던것이 익숙하셔서 해외인솔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기도 하지만 혈기왕성? 한 20대의 나는 그런호칭은 정말 싫으니 인솔자로 불러주시기를 당당하게 요청드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왕고참이 된 나에게 손님들도 현지가이드분도 인솔자 선생님이라 부른다.
물론 연세가 있으신 분들께는 *팀장 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이제는 패키지여행자들을 리드하는데 묵은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손님들은 인솔자를 처음부터 좋아하시지는 않는다.
그전 여행에서 인솔자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으셨던건지 아니면 당신이 여행경험이 많으셔서 인솔자의 손길은 별로 필요없다고 생각하셔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을 열지않는 손님들을 만나면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했다.
특히 어떤분들에겐 인솔자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가 중요하신 분들도 있다.
미혼인 인솔자들에게는 역마살이 있어서 결혼하기 힘들 거야라고 말씀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팔자가 센 직업이라는 근거 없는 말씀을 하시며 아랫사람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인솔자들은 팔자가 센 것이 아니라 열정과 책임감이 센 분들이다.
패키지여행이 가져다주는 행운이라면 그런 인솔자를 만나 여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패키지여행 경험이 없으시거나 인솔자가 없는 여행을 선택하신분들은 인솔자가 왜 필요한지 모르신다.
유니폼을 멋지게 차려입은 승무원들은 겉으로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것 같지 않는 이미지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러나 10시간이 넘게 비행하는 승무원들의 업무는 그러하지 않다.
그들은 손님들의 식사와 잠자리를 책임지며 심지어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 고객의 안전에 힘쓴다.
인솔자들의 역할도 그러하다.
물론 인솔자가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도 종종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돈만 많이 버는 책임감 없는 인솔자 말이다.
따라서 패키지여행은 인솔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때도 나는 손님들보다 1시간은 일찍 식당 앞에서 대기했다.
현지여행사가 다 예약을 해놓은 상태이지만 식당 오픈시간, 메뉴, 위치 등등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사항을 미리 체크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출발해도 손색없는 말끔한 차림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손님들께 정확한 식당의 인폼을 드린 후 가장 늦게 식사를 시작한 후 가장 빨리 식사를 마치고 나온다.
여행일정동안도 그러했다. 손님들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일정 중에 가는 식당에서도 모든 메뉴가 다 나올 때까지는, 특이체질이 있는 손님들이 있는 경우는 따로 주문한 음식이 나온 걸 확인할 때까지는 식사하지 못했다.
호텔에 도착해 손님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때까지 나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MZ 세대의 인솔자들은 나와 다르다.
나도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손님들과 소통하며 단체톡방을 통해 불편하신 점을 전달받거나 정보를 공유한다. 나 같은 아날로그 인솔자처럼 일일이 찾아가 응대하지 않는다. 몸으로 뛰지 않는다.
말 그대로 아주 스마트한 방법이 더 익숙한 인솔자들이다.
그들은 아침식사 때 나처럼 1시간이나 일찍 나오는 인솔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손님에대한 과잉보호라 생각한다.
여행일정 중에도 간단한 여행지 설명 후 손님들께 자유시간을 드리고 본인들도 그들만의 여유시간을 갖는다.
나처럼 자유시간을 드리고도 내가 도움이 돼 드리지 않을까 손님들의 주변을 맴도는 일은 없다.
손님들께는 어떤 인솔자가 더 좋은 인솔자일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인솔자로서의 나의 방식이 이제 신세대 고객들에게는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내가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때 행복함을 느낀다.
나의 인솔자 생활은 그러했다.
비록 수많은 상황을 겪으며 두려움과 책임감으로 힘들어할 때도 많았지만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지쳐잠든 나를 토닥여주시는 손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을때처럼, 여행중 당신의 마지막 죽음 앞에서도 고맙다는 말을 남기신 어느 아버님처럼,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꼭 안아주셨던 어머님처럼 나의 인생은 그렇게 따뜻한 분들과의 동행이었다.
나의 아날로그 방식의 정성과 사랑을 추억하고 계실 아날로그 시절의 나의 고객들...
당신들이 있어 나의 인생은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