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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엠 어 티시

  나는  전설의 까투리다.

by 솔자 Jan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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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4일 오후 1시  언제나 활기가 넘치던  인솔자실에는  적막한 기운이 흘렸다.

그리고 곧이어 마이크를 잡은  총괄이사님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오늘 오후부로 저희 회사는 최종부도  처리되었습니다."

아침조회 때만 해도 중앙일보에 회사가 부도처리되었다는 기사는 사실이 아니니 절대 동요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허니문팀을 이끌고 호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니 2주 후에도 또다시 허님문팀이 잡혀있는데 회사가 부도처리되었다니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모두들 오늘이 만우절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인솔자실밖에서는 이미  여행예약자들의 항의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댔고   최종부도소식에 달려온 손님들의 고성으로 사무실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대한민국 여행사 중 송출 1위를 기록하던 나의 인솔자로서의 첫 직장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하루아침에 나는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회사가 부도나기 3일 전  1997년 11월 21일 국가 도산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구제요청을 신청했고 그 후 3일 만에 무너진 우리 여행사를 기점으로 여행업계도 줄도산이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 전 국민의 금 모으기, 아나바다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등등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힘겨웠던 IMF시절을 극복해 나갔고 나 또한 힘겨웠던 긴 터널을 나와  새로운 여행사에서 다시 한번 인솔자로서 호주뉴질랜드 첫 팀을 나가게 되었다.


드디어 그렇게도 다시 오고 싶었던  뉴질랜드의 첫날일정이 끝나고  가이드분께서는  한식당에 많은 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하셨다.

식당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IMF 전 가족같이 지냈던 여행업계 종사자분들이 모여계셨고 우리는 그동안 힘겨웠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셨지만 한민족의 흥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법, 기분들이 좋아지신 분들께서는 노래방기계를 틀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에 실어 한곡조씩 뽑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고 나름 20대 후반의 신세대였던 내가 골랐던 노래는 모두를 의아하게 만드는  김세레나의 "까투리타령"이었다.


사실  김세레나의 "까투리타령"은 그날  나를 반겨주시는 어르신들께 흥겨움을 드리기 위해  선택한 노래였다.

하지만 그 반응은 대단했고 내 안에 그런 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조차도 놀라웠다.

다음 앙코르곡으로 달타령 새타령 꽃타령 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의 별명은 "까투리"로 불려졌다.


그 이후 뉴질랜드 출장을 오게 되면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과  양 떼들 보는 것도  지루해질라치면  나의 까투리타령 본능은 꿈틀거렸다.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오시는 지역이라

앙코르를 대비하여 꽃타령 새타령등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딴따라는 말은 연예인에게만 속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나의 노래에 흥이 넘치면 어머님 아버님들도 한곡조씩 답가를 불러주셨고 버스 안은 전국노래자랑 녹화장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MZ 세대들은 이 정겨운 풍경을 상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던 버스 안은 행복이 가득했고 까투리타령을 구성지게 불러드렸던 그때 그 시절 나는 뉴질랜드의 야생화 루핀만큼 참 예뻤다.

뉴질랜드남섬 테카포호수길을 달리는 관광버스뉴질랜드남섬 테카포호수길을 달리는 관광버스


유일하게  "솔자의 콘서트"가 허락되었던 뉴질랜드 남섬 버스 안, 화려한 무대가 되어준 테카포호수와 야생화루핀, 나의 히트곡 "까투리타령"을  함께 부르시며 열성 팬클럽회원이 돼주시던 어머님 아버님들.. 그 아름다운 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 그립고 소중하다.



뉴질랜드에 출장 간 지도 어느덧 10여 년도 넘은듯하다.

아니, 어쩌면 다시 그곳에 갈 날이 못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가게 된다면,
테카포 호수와 야생화 루핀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로
전설의 까투리가 부르던 "까투리타령"이 메아리쳐 울릴지도 모른다.


지나간 것이 이토록 그리운 기억이 될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또 그리울 것이다.


선물(Present) 같은 현재( Present)를 사랑하자.

그때의 내가 그리워지듯, 현재의 나도 언젠가 그리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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