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이도 추억이다.
딜레이(Delay)...
나에겐 참으로 피곤하고 버거운 단어였다.
그래서인지 비행기 딜레이가 자주 일어나는 스페인 국내선을 이용하는 패키지팀을 인솔할 때면 어느 때보다 긴장을 많이 했다. 심지어 "매를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99퍼센트 딜레이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정보를 손님들께 미리 흘렸다.
물론 제시간에 출발하면 다행인 거고, 딜레이가 되더라도 미리 알고 간 것이라 손님들의 분노가 조금 덜할 수 있기에 나의 이 작전은 매번 반복됐다.
그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 8시 30분 출발예정인 포르투갈의 항구도시 포르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 팀은 새벽 5시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공항은 언제나 복잡하기 때문에 최소 출발 3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일찍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새벽부터 북새통이었고 수속부터 게이트 도착까지 무려 3시간이 걸렸다.
비행기가 딜레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에는 출국장의 긴 줄행렬 때문에 오히려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손님들과 함께 미친 듯이 뛰어 출발게이트에 도착하니 운수대통한 날인지 딜레이도 안되고 오히려 이미 보딩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행기에 탑승해 안전벨트를 맨 지도, 출발 시간이 지난 지도 30분이 넘었지만 비행기는 전혀 이륙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 손님들은 조용히 기다리는 다른 유럽 사람들과 달리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웅성웅성대기 시작했고 이내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기 시작하셨다.
손님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 또한 계속해서 별다른 안내도 없이 안전벨트만 매고 있으라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벨트를 풀고 비행기 앞쪽에 있는 객실사무장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Aircraft defect(기체 결함)"라는 짧은 대답이었으며 표정은 미소를 지었지만, 다들 잘 기다리고 있는데 따지듯이 물어오는 동양인 투어컨덕터가 귀찮다는 듯이 "Sit down please"...라는 또 한 번의 짧은 답변으로 대화를 끝냈다.
솔직히 다른 때 같으면 이런 사무장의 태도에 컴플레인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불평한마디 없는 이 비행기 안의 군중심리에 밀려 손님들도 나도 그저 승무원들이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기다림은 점점 길어져 드디어 출발시간보다 2시간이 흘렀고, 그제야 승무원들은 종이컵에 물 한 잔씩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더 신기한 것은, 어쩔 수 없지 라는 표정으로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다른 승객들의 태도였다.
드디어 3시간이 흐르자 이 비행기는 기체결함으로 출발할 수 없으니 모두 내려 지상직원의 안내를 받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또 한 번 신기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승객들은 단 한 명도 승무원들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조용히 운명을 받아들이듯 비행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를 맞이해 주는 항공사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도대체 누구의 안내를 받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게이트 앞에서의 딜레이는 수없이 겪어봤지만, 이렇게 3시간을 비행기 안에 갇혀 있다가 달랑 물 한 잔만 먹고 내린 것도 처음인데 설상가상으로 지친 우리를 도와줄 그 어떤 직원조차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팀을 제외한 나머지 승객들은 여전히 저렴한 항공권을 이용하니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기내에서 나오자마자 어디론가 빠르게 흩어졌다.
나는 곧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는 인솔자다. 어떤 상황이 와도 손님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임무였다.
곧바로 나의 분신인 여행사 깃발을 높이 들고 손님들께 외쳤다.
"모두 제 뒤를 잘 따라오세요."
나에겐 그저 전진뿐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면세점 구간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우리를 도와줄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항공사 안내 데스크 부스... 그것은 사막에서 찾은 오아시스와 같았다.
일단 손님들을 의자가 있는 곳에 모셔다 드린 후 곧바로 부스로 달려갔다.
직원에게 보딩 티켓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자기 담당이 아니니 출국장 밖 항공사 안내데스크로 가보라"는 말 뿐이었다.
무책임한 직원의 태도에 참아왔던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바로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이었다.
영어가 가능했던 그녀는 항공사 직원도 나몰라라 했던 새로운 탑승게이트번호를 알려주며 바르셀로나공항에서의 딜레이는 너무 자주 있는 일이고 지상 직원들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다는 승객들 스스로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게이트로 이동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했다.
또한 K- POP을 좋아했던 그녀는 한국단체여행팀이 함께 탑승했던걸 기억했기에 도움을 주고 싶어 오히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 산다는 고마운 그녀가 알려준 게이트로 이동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10유로짜리 밀쿠폰을 받고 있었다. 비싼 유럽 물가에 10유로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물 한 잔 준 항공사가 이 정도면 큰 인심을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께 식사 가능한 곳을 알려드린 후 나는 다시 게이트 앞 항공사직원에게 새로운 보딩 시간을 물었다.
직원의 대답은 여전히 간단했다.
"I don't know."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었다.
그 후로도 또 한 번의 게이트 변경 후, 드디어 오후 3시 반이 되어 포르투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미리 컴플레인 양식을 받아 작성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승무원에게 요청하니 서류가 다 떨어졌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제 나도 손님들도 그저 비행기가 뜨기만을 바랄 뿐,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다행히 추가로 딜레이 없이 1시간 30분 만에 포르투에 도착했다. 아침 10시에 도착해야 할 비행기가 오후 5시에 도착했다.
나에겐 은인과도 같았던 K-POP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언제라도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고 인사를 나눈 후 우리 팀은 아침 7시부터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현지 가이드와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진한 인사를 나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늦은 점심은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곧바로 포르투에서의 투어를 시작했다.
다행히 해가 늦게 지는 여름철이라 관광 일정을 최대한 늦게까지 소화할 수 있었으며 투어를 마친후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리스본을 향해 이동했다.
리스본 도착 후 밤 10시였지만, 여행사에서 준비한 중국식당에서 늦었지만 제대로 된 저녁만찬을 즐겼다.
숨 가쁘게 돌아간 하루, 비행기 딜레이의 매운맛을 경험한 하루, K- POP의 힘이 얼마나 컸다는 걸 알았던 하루 그리고 손님들께 최선을 다하는 나 자신을 인정받은 하루였다.
다음날 리스본에서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이트 앞에서 손님들은 농담을 던지셨다.
"이제는 더 이상 딜레이는 없겠죠?"
인생은 살면 살수록 여행과 닮아있다. 예상치 못한 딜레이와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가야 하며 때로는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받아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
막막했던 현실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준 그녀, 그리고 책임감에 힘들어할 때 나를 믿어주고 묵묵히 기다려준 손님들...
여행길에도, 인생길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날 이후 다행히 내가 겪은 최악의 딜레이 경험은 동료 인솔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었다.
세상에 어떤 일이던 의미 없는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살면서 무언가 딜레이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그저 천천히 가는 것뿐이다. 우리는 결국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