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엠 어 티시

현실 속 우영우를 만나다.

by 솔자

2022년,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일 것이다.


나 역시 생소한 제목에 이끌려 첫 회를 시청하게 되었고, 매회 감탄을 자아내게 한 박은빈의 열연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드라마 속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다. 그 천재성 때문에 더욱 특이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본다. 왜 제목에 '이상한'이라는 단어를 넣었을까?


아마도 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생소하고 낯설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다'는 표현은 다름을 잘못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그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뿐인데, 우리는 그 차이를 쉽게 '이상함'으로 규정해 버린다.


내가 인솔자로 여행을 다니며 신체적 장애가 있는 손님들을 모실 때도 신체적 불편함을 가지셨을 뿐이지 여행에 대한 열정이 덜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특히 나의 고객 중 뇌졸중으로 시력을 잃으셨지만,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아버님은 여행의 마지막을 다음 여행을 꿈꾸는 모습으로 마무리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불편한 분들과 달리, 발달장애를 가진 분들과의 여행은 쉽지 않다. 그리고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 어느가을, 나는 과감히 그 여행을 선택한 한 부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와 아버지는 마치 드라마 속 우영우와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첫 만남은 인천공항에서였다.


나는 손님들과의 첫 미팅을 위해 공항의 만남의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한 중학생 아이와 함께 온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사실 출발 전부터 궁금했다. 중학교 2학년이라는, 흔히 말하는 '중2병'이 한창일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오는 것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서 그 아이는 억지로 따라온듯 무표정해 보였고, 아버지 역시 평범한 모습이었다.


벤쿠버까지는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이었고, 밤낮이 바뀌는 시차 적응이 문제였다.. 도착하자마자 곧장 호텔로 가고 싶을 만큼 모두가 지쳐 있었다. 하지만 패키지여행은 항상 일정대로 움직인다. 첫 일정으로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한 손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우리랑 같이 앉은 저 중학생 좀 이상해요. 계속 우리가 같이 식사해야 하나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부자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그저 평범한 아이와 아버지로만 생각했던 나는 손님의 말을 듣고, 그들이 특별한 사연을 가진 것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아버지는 짧게 “네”라고 답했지만,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푸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후 식사 시간은 늘 힘들었다.


손님들은 매번 불만을 제기했다. 아이가 반찬을 흘리고 밥을 흩트려놓는 모습을 보고 불편해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두 사람만을 위한 별도의 테이블을 원하지 않았다. 마치 우영우의 아버지가 우영우를 일반 학교에 보낸 것처럼, 그 또한 아이를 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식사 때마다 불편하셨을 손님들께 따로 찾아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부부가 그 모자와 함께 식사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 이후로 아이는 식사 시간에 소리 지르는 횟수가 줄었고, 음식을 흘리며 먹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이든 어른이든, 장애가 있든 없든, 결국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의 행동도 달라진다는 것을.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8일간 고생하신 가이드분과 호텔 로비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기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불안한 표정으로 로비를 헤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며 아이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아이가 없어졌어요."
아버지는 그제야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는 즉시 가이드분과 호텔과 연결된 토론토 국제공항을 뒤지기 시작했다. 넓은 공항을 헤매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은 마치 내 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이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절망적인 그순간 기적처럼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공항 여기저기에 비치되어있는 여행 팸플릿을 가득 안고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서 있었다. 마치 나를 반가워하는 것처럼.


아이는 무슨일이 있냐는듯 나를 쳐다보며 내가 다가가자 가슴 가득 안고 있던 팸플릿 몇 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마치 자기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주듯 말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토론토를 출발한 우리는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 나에게 목례와함께 감사의 눈빛을 건넸다. 그러나 아이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토론토 공항에서 그 아이가 나에게 준 팸플릿이야말로 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에스칼레이터를 타고가던 아이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아니 나에게 손을 흔드는것 같았다.

말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그 아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넨 순간, 나는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번 여행이 그 아이와 아버지에게 행복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아이는, 그리고 그 아버지는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현실 속의 우영우처럼, 그들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