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향하는 팀의 인솔자로 배정받았다. 내가 근무하던 여행사는 홀세일(wholesale) 여행사로, 각 대리점을 통해 고객을 모집하고, 본사에서 인솔자를 파견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여행사에서는 이러한 팀을 '인센티브 팀'이라고 부르는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나 동창모임, 수학여행, 기업이나 공무원연수 등등 이는 대부분의손님들이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특히 이번 팀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오랜 지인들의 모임이었으며
대리점 사장님과 손님들은 형님, 누님 하며 지내는 가족 같은 관계였다.
게다가 대형 버스 두 대로 이동해야 할 만큼 인원도 많아, 출발 전부터 심적부담이 컸다.
그런데 손님 명단을 살펴보니 부모님 연배의 분들 사이에 나와 동갑인 남성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순박한 이름만으로도 젊은 이장님이 아닐까라고 생각되는 그의 이름은 봉*씨였다.
드디어 출발당일 오후 비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 일찍 손님들의 여권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그 당시에는 단체 온라인 체크인이 불가능했기에 무조건 공항에 일찍 도착해 좌석을 배정받아야 일행끼리 좌석을 맞춰줄 수 있었다.
다행히 첫 번째 관문인 좋은 좌석 확보는 성공했고, 드디어 손님들과의 미팅시간이 되었다.
멀리서 대리점 사장님을 선두로 걸어오는 손님들이 보였고 그중 가장 젊어 보이는 분이 봉* 씨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봉* 씨는 예상대로 친근한 인상이었다. 대리점 사장님은 다소 까다로우셨지만 다행히 손님들은 모두 호의적으로 보였다.
모든 출국 수속을 마치고 언제나처럼 휴식을위해 항공사 라운지로 향하던 중 면세점 근처에서 봉*씨를 발견했다.
비행기탑승 전까지 라운지에서 혼자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면세점 주변을 혼자 서성이고 있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항공사 라운지는 한 티켓당 두 명이 입장할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함께 들어가자고 말했고 봉* 씨도 선뜻 나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라운지에서 우리는 제대로 통성명을 나누었다. 그리고 봉* 씨가 이번 여행에 함께한 이유도 듣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이야기에 나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봉* 씨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유명한 여장부로, 국내외 여행을 주도하셨고 그때마다 이번에 함께하신 대리점 사장님을 통해 여행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출발 몇 달 전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당신이 가지 못하는 여행을 아들인 봉* 씨에게 대신 다녀오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봉* 씨에게 나는 말했다.
"우리 동갑이니까 친구 해요! 괜찮죠? 내가 여행 내내 친구가 되어줄게요."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봉* 씨는 생각보다 훨씬 씩씩하고 의젓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삼촌과 이모뻘 되는 일행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가끔씩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함께 행사를 진행하는 가이드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나와 함께 봉* 씨를 위로하기 위한 시간을 매일 준비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질 밤이 되면, 우리는 봉* 씨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뉴질랜드의 유명한 와인인 오이스터 베이를 함께 마시며, 그가 준비해 온 한국 소주를 나누며 때로는 함께 울먹였다.
우리는 모두 봉* 씨의 슬픔을 겪어야 하는 예비 아들딸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천국에서 지켜주신 덕분일까? 여행은 순조로웠고, 가는 곳마다 즐거움이 넘쳤다. 그토록 오고 싶어 하셨던 어머니의 몫까지 삼촌, 이모들과 봉식*씨는 행복해 보였다.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3,774미터의 마운트 쿡 트레킹 길을 걸으며, 나는 봉* 씨에게 영화 'The Way'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화 The way 속 아들과 함께하는 아버지
"영화 속 아버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떠났던 아들이 조난당한 후, 아들의 유해가 담긴 상자를 메고 아들이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산티아고 길을 대신 걸었어요. 그러나 그 길은 아버지 혼자가 아니라 늘 아들이 함께했기에 행복했답니다. 지금 봉* 씨가 걷고 있는 이 트레킹 길에도 어머님이 함께 걷고 계실 거예요."
봉* 씨는 내 이야기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삼촌, 이모들 사이에 어머니가 함께 서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운트 쿡 트레킹 길은 그 어느 때보다 웃음이 넘쳤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