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언니들처럼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비행기뷰(김포공항이 가까운 지역)에살았던 나는 5살 터울의 여동생과 마루에누워 몇 분에 한 번씩 바퀴가 보일 정도로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우리가 비행기를 타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승무원이 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 자매의 꿈은 이루어졌다.
나는 인솔자가 되었고 나의 여동생은 결국 승무원이 된 것이다.
5살 터울의 나의 여동생은 기특하게도 대학시절 나갔던 해외봉사의 기회를 발판 삼아 자신을 개척해 나갔고 그 당시 세계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던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이 한국에 취항하지 않은 관계로 여동생은 두바이에서 거주하며 승무원생활을 하였기에 휴가 때가 아니면 여동생을 만날 수 없었다.
동생이 그리워서 그런지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고생하는 승무원들이 나의 가족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예쁜 유니폼을 입은 모습만이 전부가 아님을 동생을 통해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힘들고 지치겠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서비스에 임하는 승무원들이 마치 나의 여동생처럼 느껴졌기에 비행기에서 만나는 승무원들께 늘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승무원들 또한 출장을 떠나거나 마치고 돌아오는 나에게 언제나 따뜻한 서비스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장시간 비행하는 동안 승무원들과 친하게 되면 제일 먼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은 도착지에 대한 정보이다.
보통 승무원들은 도착 후 하루나 이틀정도 쉬었다 다시 그 비행기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여유 있게 그 도시를 관광할 시간이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손님들과 함께 여행하는 인솔자라는 직업을 부러워할 때가 많았다.
내가 멋지게 차려입은 승무원들을 부러워했을 때가 있었던 것처럼 그들도 인솔자들의 극기훈련 같은 일정을 알았다면 부러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인솔자들의 성수기는 보통 가장 더운 7~8월에 몰려있었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월차나 개인적인 휴가를 이용해 일 년 내내 여행객들이 몰리지만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었던 그 시절만 해도 성수기는 가장 더운 여름철이었다.
심지어 성수기를 잘 버티기 위해 보약을 미리 지어먹는 경우가 다반사였을 정도이다.
그때가 되면 보통 한 달에 25일은 하늘을 날고 있거나 세계 곳곳의 관광지를 누비고 다녔다.
심한 경우는 아침비행기로 귀국해 저녁비행기로 출국하는 일정도 불평 없이 해내야 했다.
그야말로 미친 스케줄이었으며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여행업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잊지 못하는 성수기 때의 그날도 역시 귀국 후 단 하루의 휴식을 마치고 출발한 날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이틀 전에 귀국 편으로 탔었던 아랍에미레이트항공 A380 기종이었다.
여동생은 2년의 승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더 이상 이 항공사에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탔던 외항사 중 가장 정이 느껴지며 그 어떤 비행기보다 신형이자 서비스 또한 최고인 비행기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비행기를 다시 탄다 해도 단지 하루의 휴식은 도저히 납득 못할 스케줄이었고 게다가 손님들만 다르지 출장지역과 스케줄까지 동일했다.
이런 스케줄이라면 그냥 두바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손님을 만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나는 그나마 출구 쪽 맨 앞자리 비상구좌석을 배정받은 것을 위로삼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그때 비행기 입구에 서서 "Welcome aboard"라고 인사하며 환하게 웃어주는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이분은 이틀 전귀국
편에서 만났던 객실 사무장님이었다.
동생이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했었다는 짧은 얘기를 나누었었던 그분이었다.
눈인사로 짧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쉬지도 못하고 또 출장을 나가는 나를 무척이나 안쓰러워하는 눈빛이었다.
짐을 정리한 후 피로에 지친 나는 곧바로 잠에 빠졌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음료서비스가 진행되고 있음이 어렴풋이 들렸지만 물먹은 솜이불처럼 무거운 내 몸은 좌석 의자 속으로 더욱더 빠져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가볍고 포근함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느껴졌고누군가 아빠의 미소처럼 따뜻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한참을 정신없이 잠에 빠졌던 나는 마치 며칠 동안 못잔잠을 다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때 내 온몸을 감싸고 있던 거위털 담요와 베개를 발견했다.
그렇다. 내가 잠결에 보았던 아빠 같은 미소는 사무장님이었고 그분은 피곤해 보이는 나에게 1등석에서 제공되는 거위털담요를 가져다 덮어주셨던 것이다.
사무장님 덕분에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이 일등석 부럽지 않은 편안한 비행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때 덮었던 거위털이불처럼 포근한 이불은 찾기 힘들었다.
그 이후로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을 많이 이용하였지만 아쉽게도 다시 사무장을 만나 뵐 수는 없었다.
그러나 두바이에 도착한 후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시며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말씀해 주시던 사무장님의 아빠미소는 내가 이제 그분 또래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얼마 전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제주항공의 비극이 일어났다
사고 여객기 안에서는 즐거운 여행을 마친 후 곧 만날 가족들을 생각하며 설렘과 웃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를 책임지던 두 분의 기장님들과 여섯 명의 승무원들은 나에게 담요를 덮어주셨던 그때의 사무장님처럼 비행 내내 고객들의 편안한 비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175명의 손님들도 기장님과 승무원들도 모두 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딸이자 아들이었을 것이고 그들 모두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전히 나는 비행기뷰에 살고 있다.
창밖에는 오늘도2~3분에 한 번씩 어디론가 떠나고 내리는 비행기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비행기에 탑승하신 승객분들과 떠나보낸 동료들을 향한 슬픔과 두려움을 마음속에 접어둔 채 여전히 밝은 미소로 고객들을 응대하고 계실 기장님들과 승무원분들께 응원의 마음을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