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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솔자
Dec 24. 2024
아엠 어 티시
다시 주어진 삶이었을까...
출장이 배정되면 유난히 가기 꺼려지는 지역이 있다.
유난히 일정이 타이트하고 힘든 지역이거나, 음식이 잘 맞지 않아 출장이
배정되면 유난히 가기 꺼려지는 지역이 있다.
고생을 했거나, 현지 스태프들과의 불협화음이 있었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솔자는 출장지 선택권이 없다.
경력이 오래되었더라도 가고 싶은 나라만 갈 수 있는 특권은 없다.
게다가 인솔자를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참 시절, 배정된 팀을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1997년 8월 6일, 괌으로 출발하는 팀을 배정받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마음은 곧이어 불길한 꿈으로 이어졌다.
꿈속에서 나는
낡은
버스에
탑승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온통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뿐이었고
심지어 하얀 붕대를 온몸에 두른 사람이 도와달라며
나에게
손짓했다.
그러나
나는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려왔다.
다음 날 아침, 악몽에서 깨어난 나는 두려움에 떨었고 이 출장은 정말로 가지 않아야겠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출장 거부의사를 밝히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물론 나쁜 꿈을 꾸었다고 출장을 못 나가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생각했지만, 나의 마음은 단호했다. 그만큼 불길함은 확실했다.
그러나 회사에 도착해 출장 배정자를 만난 나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괌으로 가는
내팀
자체가 취소되었고, 곧 다른 지역으로 배정될 거라는 것이었다.
날아갈 것 같았다.
찌는 듯한 한여름의 목마름에 차가운 맥주 한잔을
들이켠
기분이랄까.
그야말로 죽다가 살아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소름 끼치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가 배정받았던 1997년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 착륙하던 중 추락한 것이다.
그토록 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추락한 비행기에는 내가 다니던 여행사의 지방팀이 탑승하고 있었고, 나와 똑같은 회사유니폼을 입은 인솔자도 있었다.
만약 내가 배정받은 서울 본사 팀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을 것이다.
괌 추락 사고 며칠 후, 나는 다른 지역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객들과의 미팅 장소에서 괌으로 출발하는 우리 회사 유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딸을 떠올리며 나를 안고 흐느꼈던 지방 인솔자의 어머니. 그 눈물의 뜨거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수많은 일을 겪으며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게 된다.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큰 절망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다행히도 그 이후, 인솔자로서의 나의 삶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주어진 삶이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여행하는 모든 분들의 삶 또한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나와 함께 하는 이 여행이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여행의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마도 피어나지 못한 누군가의 응원 덕분일까?
나는 점점 더 나은 인솔자가 되어갔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누군가가 양보하고 간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만끽하자.
지금도 가끔씩, 다시 주어진 나의 삶에 대한 감사함이 식어갈 때면 그때를 떠올린다.
살고 싶었을 그들을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여행 가는 날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 하나만으로도 인생에 단 한 번뿐인 하루를 미소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여행을 돕고,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직업,
어쩌면 다시 주어진 나의 삶에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여행도 인생처럼, 인생도 여행처럼.
나는 그렇게 감사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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