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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솔자
Dec 31. 2024
아엠 어 티시
적과의 동침
스페인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야기는 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서른 살 무렵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에 가지 못한 이유도 바로 그 소매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향하려던 나는 동행한 후배와 함께 소식을 접했다. 스페인을 먼저 여행한 다른 배낭여행객들이 전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전 재산을 도난당했고, 특히 여성 여행객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많아 위험하다는 경고를 했다.
결국 우리는 스페인 일정을 포기했다.
그 후 인솔자로서 스페인 출장을 가게 된 나는 소매치기에 대한 방어 태세를 누구보다 철저히 했다.
덕분인지 내가 인솔한 팀에서는 소매치기 시도가 몇 건 있었으나 피해를 입은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해외 전문 인솔자란 손님들의 즐겁고 안전한 여행을 위해 24시간 고군분투하는 존재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소매치기와의 전쟁이라 할 정도로 그 수법이 대담해졌고, 손님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인솔자가 상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손님들을 위해 여행 내내 애쓰던 인솔자가 소매치기보다 더한 도둑으로 몰린 것이다.
바르셀로나 일정 마지막 코스인 몬세랏으로 이동 중, 친한 가이드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다른 일정으로 스페인을 여행 중이던 후배 인솔자팀과 함께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자초지종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지금 도둑으로 몰려 호텔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상황이 궁금했지만 스페인 마지막 날의 바쁜 일정 때문에 바로 확인할 수 없었고, 그날 저녁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한국에 귀국한 후배 인솔자를 만나 그 상황을 들었다.
후배의 팀에는 세 자매 손님이 있었다.
여행 내내 후배인솔자와 잘 지내던 이들은 아침 일찍 후배의 방으로 전화를 걸어 객실 카드키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새 키를 요청했다고 한다.
후배는 로비로 내려가 새 카드키를 만든 뒤 손님방으로 가져갔다. 손님들은 카드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겠다며 후배에게 방 안에 들어가 달라고 요청했다.
후배는 요청대로 방 안에서 키 작동을 확인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자매로부터 전화가 왔다.
후배는 다시 그들의 방으로 불려 갔고, 그곳에서 “도둑”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세 자매는 테이블 위 봉투에 넣어둔 현금 50만 원이 사라졌다며 후배를 의심했다고 한다.
또한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여행객들에게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다행히 이 엄청난 일들이 귀국 후 회사의 철저한 조사 끝에 세 자매가 이미 상습적인 블랙컨슈머 전적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블랜 컨슈머란 여행사를 바꿔 가며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컴플레인을 제기하고 부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억울했던 후배는 눈물을 흘리며 당시의 고통을 회상했다.
여행 내내 온몸을 다해 손님들을 소매치기로부터 보호하고, 추억이 가득한 여행을 만들어드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면서 도둑으로까지 몰리는 일을 당하고 나니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당분간은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다는 말을 남겼다.
후배의 일은 어쩜 나에게 올 수도 있는 슬픈 현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랫말처럼, 인솔자란 직업은 때로는 최선을 다해도 뜻하지 않은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가냘픈 새와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사랑을 알고 진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다.
또한 우리가 받은 상처는 다시 새로운고객들의 믿음과 신뢰로 아물게 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싶어 하며, 모든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
그 속에서 인솔자는 여전히 손님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중요한 존재로 남아 있다.
인솔자와 여행자는 여행이 맺어 준 특별한 인연 속에서 가족처럼 가까워지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간다.
더 이상 인솔자와 여행자가 적이 되는 슬픈 순간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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