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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자 Oct 29. 2024

아엠 어 티시

마음으로 보시는 아버님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이제는 안녕을 고하고 어느새 우리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세상에 펼쳐질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사계절마다 신이 주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당연할 것 같은 것이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다.


매년 여행성수기인 7~8월이 되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몰린다.

그러나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보다 비행기공급이 부족하게 되다 보니 디렉트로 가야 할 곳도 두세 번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직항을 타고 떠나는 상품으로 간다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다.


그러나 그해 여름성수기에는 나에게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스페인일주 상품을 가면서 영국 히드로 공항을 경유해야 했다.

밀려드는 여행자들로 인해 평상시에는 운항하지 않던 영국항공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었다.


사실 처음 만들어진 상품은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

또한 다녀온 인솔자들이 많지 않으니 제대로 된 인폼을 듣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상품일수록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30명이 넘는 많은 인원이 모객 된다.


인솔자를 하다 보면 징크스 같은 걸 갖게 된다.

출발당일 어떤 분이 첫 손님으로 오시느냐에 따라 그 팀의 기대치가 결정된다.

그날의 첫 손님은 세련된 신사분과 그분의 아내와 따님으로 보이는 두 분이었다.

어찌나 다정한 가족인지 아내분과 따님은 아버님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밝은 미소로 나에게 걸어오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란한 가족이 이번팀의 첫 손님이라 생각했고 평범한 여행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 나에게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 반가워요 내가 시각장애인인데 우리 가족 잘 부탁해요~"


분명히 아버님의 두 눈은 나를 보고 말씀하고 계신데 앞이 보이시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출발 전 상품담당자가 우리 팀에 시각장애인이 계시다는 어떠한 인폼도 주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의 어깨는 무거웠고 장애가 있으신 분을 어떻게 케어해야 할지 정말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 나에게 따님으로 보이는 분은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다.

그분은 사실 알고 보니 아버님을 돌보고 계신 간호사이셨다.

안타깝게도 아버님은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시력을 잃게 되셨다고 한다.

그러나 시력을 잃기 전 다녀오셨던 스페인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이렇게 여행을 오게 되신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보호자로 아내분과 간호사님이 함께 동행하기에 여행사에는 이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연을 듣고 나니 직항으로 가는 상품을 선택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과 아무것도 보실 수 없는 분이 어떻게 여행을 하실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이 상황을 인정했다.

그리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다행히 첫 번째 관문인 영국 히드로공항에서의 여정은 넉넉한 환승시간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고 무사히 도착한 스페인의 일정 또한 순조롭게 흘러갔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버님은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도, 관광지에서도, 마치 다 보이시는 것처럼 연신 신나게 말씀하셨다.


"참 멋지지? 참 아름답지?"


그리고 아침출발땐 제일 먼저 로비에 앉아계시며 다가가서 인사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굿모닝 팀장님~"

오늘은 어제보다 더 꽃같이 예쁘네요, 오늘입은  셔츠가 참 잘 어울려요.

나는 마음속에 눈이 있어 다 보인답니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던 나는 아버님의 손을 잡고 아버님의 두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참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라고 말씀드리며 함께 웃었다.


여행 내내 아버님은 유쾌하셨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한 여행을 참으로 행복해하셨다.


돌아오는 마지막날  스페인출발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환승지 인 영국 히드로공항에서 30명이 넘는 우리 팀은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그때 아내분과 간호사님의 손을 잡고  따라오시는 아버님이  걱정되어 연신 뒤를 돌아보는 나에게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걱정 말아요 나 잘 따라가고 있어요"


정말 아버님의 마음속눈에는 걱정스러운 내 모습이 보였던 것일까?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다.

어쩌면 아버님의 바람대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다시 시력을 되찾으셨을 수도 있다.


마지막 헤어지는 인천공항에서  다른 여행지도 함께하기로  그리고  자주 연락드리기로 약속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심한 나한테 서운하셔서 꽃같이 예쁘다고 하셨던걸 후회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핸드폰에는 여전히 아버님의 번호가  '마음으로 보시는 아버님'으로 저장되어 있다.

내 마음속에도 늘 웃음 짓던 아버님이  저장되어 있다.




내일도 날씨 맑음 예정이다.

얼마나 눈부신 가을날들이 펼쳐질까...

세상을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음에 감사하며

아름다움을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이들 몫까지

만끽하고 만끽할 것이다.


가을날이 아름다운 건 눈부시게 아륾다운 세상을 바라볼수있는 사랑스러운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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