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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자 Nov 05. 2024

아엠 어 티시

불효관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우리에게는 예로부터 부모님의 장수를 축하드리는 특별한 잔치가 있었다. 60세에는 환갑잔치 70세에는 칠순잔치  80세에는 팔순잔치가 그런 기쁜 자리들이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패키지관광이라는 해외여행상품이 생기면서 자식들이 부모님께 잔치대신 효도관광을 보내드리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가 인솔자일을 시작하던 90년대 중반에 가장 인기 있었던 상품이 효도관광이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해외로 모시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리겠다는 마음으로 효도여행을  선물해 드렸다.


그러나 자식들이 보내준 효도라는 이름의 여행이 오히려 부모님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면, 그것이 과연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효도관광이 불효관광으로 바뀌어 부모님을 눈물짓게 만드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참으로 많이 보아왔다.


지금은 없어진 상품이지만 90년대 중반  매진행렬을 이루던  홍콩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6박 7일 상품은 듣기만 해도 힘든 일정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일주일 동안 동남아 4개국을 돌아보는 긴 일정이다.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몇 개국을 갔다 왔냐가 더 중요한 그때 그 시절에는 짧은 시간에 동남아를 순방할 수 있는 이 상품이야말로  자식들에 입장에선 많은 곳을 보내드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효도상품이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은 이 상품으로 출장을 나갔던 나는 여행일정 내내 힘들어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과연 이 여행이 진정한 효도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극기훈련 같은 이 일정이 어쩌면  자식들이 부모를 상대로  불효를 저지르게 만드는  여행상품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특히 한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불효관광의 끝판왕으로 여전히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그 당시 나는 효도관광의 간판상품인 홍태싱말 6박 7일 코스 출장 중이었고   첫 번째 코스인  홍콩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목적지 태국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던 나는 친한 동료인솔자가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남자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친한 동료인솔자는 여자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남자화장실에서 나왔을까...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동료인솔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고   할아버지를 게이트 앞 의자에 모셔다 드린 후  기가 막힌 사연을  나에게 들려줬다.


80세이신 할아버지는 중학교1학년 손자와 함께  효도관광을 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치매증상이 있으신 할아버지는 홍콩여행 일정을 진행하는 동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셨고 관광지뿐만 아니라  관광버스 안에서도   실수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가이드분이 더 이상 도와 줄수도 없는 홍콩공항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동료인솔자는 할아버지를 씻겨드리기 위해 남자화장실까지 함께 들어갔던 것이다.



사실 치매로 인해 할아버지의 실수가 반복되자 한국에 계속 연락은 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식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더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함께 온 중학생 손주말에 의하면  용돈을 많이 준다는 부모의 설득에 할아버지와 여행을 오게 된 거고 현재 할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 즉 중학생아이의 부모는  유럽여행 중이라는 것이다. 너무도 기막힌 사연을 들었지만  비행기스케줄이 서로 달랐던 나는 동료에게 아무 도움도 되어주지 못했고 치매 걸린 할아버지 팔짱을 끼고 기내로 들어가는 쓸쓸한 동료의 뒷모습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내팀으로 오신 분들의 수많은 불효여행을 목격했다.


미서부여행에 홀로 오신 70대 아버님은  관광지에서 한 번도 내리시지 않았다. 여행 내내 창밖만 바라보시며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하셨다. 화장실도 내가 모시고 다녀야 했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늘 아버님 근처를 살펴야 했다. 아버님의 외롭고 서글픈 여행이 자식들이 바라던 여행이었을까?


캄보디아 4월은 40도가 넘을 정도로 1년 중 가장 더운 날씨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80대 부모님들에게 뙤약볓아래  돌덩어리 유적지를 보여드리는 게  과연 효도일까? 여행가방하나 제대로 싸주지 않아 입을만한 옷하나 없는 두 분이 그늘만 찾아다니며 귀국일을 기다리는 게 자녀분들이 바라는 효도관광이었을까?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고생만 하신 부모님께 해외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리고 싶어 하는  자식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나도 안다.


그러나 진정한 효도관광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가 보내드리는 여행이 부모님을 슬프고 힘들게 만든다면 그것만큼 불효는 없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왔던 중학생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을 것이며 자신의 부모가 할아버지께 보내드린 철저하게 계획된 불효관광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 아이가 경험한 불효관광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만을 바라지만  어쩌면 성인이 되었을 그 아이는  그의 부모가 할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부모를 외면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부모는 절대  자식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없음이 틀림없다.



부모는 어느 별에서 온 천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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