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출발하는 일정이 여서도 그러하지만 모닝커피를 많이 마시다간 큰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은 세계적으로 교통체증이 심한 도시 1,2위로 꼽힐 만큼 도로가 복잡하다.
따라서 모든 투어일정은 교통혼잡을 가만하여 진행되고 투어가 끝나 국제선공항으로 이동할 때도 무조건 두세 시간은 여유를 두고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참으로 잔소리가 많은 인솔자다. 그중에 3가지를 꼽자면 건강, 안전, 그리고 화장실이다.
그중에 화장실은 거의 반 강제적이다.
무조건 보이면 다녀와야 하는 곳이 화장실임은 열 번을 백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유럽의 화장실은 참으로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깨끗하고 큰 화장실은 그리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2시간은 달려야 화장실을 갈 수 있다.
게다가 유료화장실인 경우도많다.
따라서 여행일정 중 휴게소에 내리면 반드시 화장실에 다녀오시도록 말씀드리는 건 아주 중요한 잔소리임에 틀림없다.
특히 이스탄불같이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서는 아침식사 시 모닝커피는 평소보다 반만 드시도록 권해드린다.
물론 커피를 좋아하는 나도 이스탄불에서는 이 규칙을 지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어머님 한 분은 내 잔소리를 설마로 생각하시고 결국 역사적인 추억을 만들고 마셨다.
튀르키예는 위치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는 곳이다.
따라서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연결해 주는 보스포로스대교를 통해 두 지역을 이동한다.
그 당시 아시아대륙에 호텔이 있었던 우리 팀은 유럽대륙의 관광지로 가기 위해서 보스포로스대교를 반드시 이용해야 했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극심한 교통체증이 있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그날도 호텔출발 전 강도 있는 화장실잔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모든 손님 들은 출발 전 한분도 빠짐없이 화장실을 다녀오셨다.
그러나 그날따라 교통체증은 극에 달했고 보스포로스대교에 진입한 우리 버스는 1시간째 다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나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화장실이 급해서 죽을 것 같다는 한 어머님의 SOS 문자였다.
뒤를 돌아보니 문자를 보내신 어머님은 이미 온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했고 살려달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계셨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아침식사 때 커피를 리필해 가며 맛있게 드셨던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 어머니를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게 만든 범인은 바로 모닝커피였다.
커피는 이뇨작용이 있어 평상시보다 적게 드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건만 사랑에 눈이 멀면 그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커피를 사랑하시는 어머님에게도 나의 잔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사태다.
버스기사분들은 싫어하시지만 그래도 미국을 여행하고 있었다면 뇌물을 써서라도 버스 안에 화장실문을 열어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기는 이스탄불이고 버스에 화장실은 없다.
곧이어 문자가 또 울렸다.
"여기서 죽느니 차에서 내리겠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어머니문자다.
차라리 이곳이 다리위만 아니라면 차에서 함께 내려 어머님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써드릴 수도 있으련만 이곳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야속한 다리 위였다.
그런데 그때 문득 아침에 혹시 몰라 챙겨놨던 **투어 비닐쇼핑백이 떠올랐다.
두꺼운 재질의 비닐쇼핑백은 어머님의 비상상황을 해결할 최후의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곧장 비닐 쇼핑백을 들고 어머님께 다가갔다." 어머니 이걸로 해결하세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어머님은 절망적인 표정이었지만 곧 큰 결심을 한 듯 빛의 속도로 버스맨뒤쪽으로 이동하셨고 곧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순간의 창피함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걸 택하신 어머님은 비상사태를 해결하신 뒤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셨고 이 드라마틱한 단편극은 이렇게 해피앤딩으로 끝났다.
수줍게 자리로 돌아가시는 어머님께 숨죽여 이 상황을 함께하셨던 나머지손님들과 기사님은 진심 어린 안도의 미소를 보내주셨다.
어머님의 모닝커피 사건 이후 이스탄불에서의 모닝커피 반잔 먹기 캠페인은 쭉 이어졌다.
보스포로스 대교를 건너야 할 땐 특히나 잔소리의 강도가 세진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그때 어머니를 살려준 비닐쇼핑백은 항상 가방에 보관하고 다녔다.
하지만 다행히도 더 이상 비닐쇼핑백을 쓸 일은 없었다.
패키지여행은 하지 말라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의심하지 말자.
살다 보면 어른들 말씀이 다 맞는 것처럼 오랜 경험을 한 인솔자들의 안내에 귀 기울인다면 죽을 만큼 힘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