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겔 Mar 18. 2020

그냥 써본 친구 이야기

서론, 그리고 R과 K에 대하여

“좋은 친구들이지”


그런 친구들이 있다. 절친이라든가 베프라든가 하는 단어를 붙이기엔 너무 소름돋는, 좋은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때 붙어 다녔고, 요새도 틈이 나면 만난다. 만날거리가 있어서는 아닌데 어쩌다보면 만나고 있다.  


나를 포함해 구성원은 다섯이다. 가장 오래 알고 지낸 R, 두 번째로 오래 알고 지낸 S, 그리고 K와 H는 누가 더 먼저인지 모르겠으니 공동 3순위로 하겠다. R, S, K, H 이렇게 넷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R과의 대화가 발단이었다.

“너 글 쓰는구나. 우리에 대한 글도 써보면 어때. 싫음 말고.”

R의 말은 늘 찝찝하게 남는다. 덫에 걸렸다.



 

R에 대하여     


R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으나 친밀감의 농도가 일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알던 사이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가면서 농도가 짙어진 것 같다. R은 초등학교 때도 성숙한 친구였다. 외양이 성숙했다. 얼굴도 키도 형 같게 느껴졌고 굵직한 목소리는 왠지 믿음을 줬다. 그런 R은 돌 같은 친구다. R이 모 대학교에서 주차요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어둠 속에 서있는 R의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한 학생이 외쳤다.

“와, 돌 아니고 사람이네.”

이 일화를 소개하면 R이 좋아할 것이다. 물론 그 이유로 돌인 것은 아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발에 돌이 치이기도 하고 흔하게 굴러다니기도 하는데, 보통 그런 돌을 돌멩이라고 한다. R은 나에게 돌멩이 같은 사람이다. 나쁜 뜻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열람실에 늦게까지 남아있었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다. R도 그랬다. 오랜 시간 같이 있었고 집에 가는 시간도 비슷했다. R은 늘 근처에 있었다. 덕분에 의지할 구석이 됐다. 답답함에 혹은 황망함에 혼자 헛소리를 지껄여도 나도 모르게 R이 들어주었다.


R은 돌덩이기도 하다. 묵직하고 단단하다. 돌덩이는 꺾이거나 흔들릴 일이 없다. 완강해서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R은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인상을 종종 받는데, 만나보면 그 고유의 멋에 감탄하게 된다. 겉보기에만 그렇게 단단해 보이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뿐이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고독해 보이기도 한다. R은 홀로 놓인 돌덩이처럼 고독해 보인다. 돌덩이도 고독을 모르지는 않는다. 고독을 즐기는가 착각한 적도 있지만 말 그대로 착각이었다. 돌은 돌의 운명을 알 뿐이었고,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R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딪히고 싶지 않다. R과의 충돌은 아프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R이 먼저 충격을 가하지는 않는다. 돌처럼 먼저 해를 가할 일이 없다. 우리가 부주의하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실수로 넘어지면서 돌에 부딪힐 때 다치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조심하면 R이 나를 다치게 할 일은 없다. 그런데 말을 하다보니 내가 돌 때문에 다친건지, 나 때문에 돌이 다친건지 모르겠다. 미안하네, 괜히.     



K에 대하여


K에 대한 첫 기억은 선명하다. 첫 대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 것이 첫 기억이다. 그는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사랑하다의 반대말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써서 건넸다.

‘사랑했다.’

‘오~ 맞아’라고 뻥긋거리며 K는 사라졌다.

  

K의 첫인상은 어두운 밤 선명한 불꽃처럼 남아있다.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에게 그는 불처럼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있을거라 생각한다. 달변가 기질도 있고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 때는 입후보하여 전교생 앞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췄다. 전사 단합대회에서도 사회를 봤다고 한다. 그렇다고 K가 하늘을 수놓는 폭죽 불꽃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캠핑장의 모닥불이 적절하다. 모닥불의 불빛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결국엔 온기에 모닥불 곁을 떠나지 않는다.      

불꽃이 타오르면 연기가 나고 재가 날린다. K도 티가 난다. 아스라이 남는 잔 미소에서, 살짝 단조로워지는 말투에서 K의 속이 드러난다. 꼭 보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보이기 때문에 잘 읽힐 뿐이다. 그래서 맞춰가기 편한 점도 있고 재밌기도 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이 드는지 도무지 티가 나지 않는 사람에 비해 보고 있기 편하다. 행동을 결정하기도 편하고.


R이 묵직하다면 K는 가볍다. 후후 불면 잘 흔들린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도 불꽃은 덩실덩실 몸을 흔든다. 때로는 어느 바람 때문인지 왜 흔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때론 예측불허로 번지는 불길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마른 들녘에 사방으로 번지는 불길마냥 난데없는 곳으로 불길이 번지기도 한다. 나중에 소개할 친구 S가 있는데, 스무살 때 그 친구는 재수를 하고 있었고, 나는 학교를 잘 다니다가 돌연 반수를 결심했다. K에게 반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 나도 S가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고 며칠 뒤, K가 도서관에 자기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찾아왔다. 최근에는 K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봄바람에 흔들렸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 즈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