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글
나는 이 세계에 세 가지 실체가 있다고 믿는다. 첫째는 인간, 둘째는 사회, 마지막은 성스러움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은 육체(감각), 정신, 그리고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체는 '행동'하고, 정신은 '사유'하고, 영혼은 '믿'는다. 특히 영혼은 성스러움을 느끼기 위해 꼭 필요한 구성요소이다. 영혼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문득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동,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살아있다는 깨달음 등을 통해서 존재를 드러낸다. 인간은 참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모두들 너무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전형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통점과, 차이점의 원천을 언젠가 글로써 밝히리라.
사회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간 없이 사회가 성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단 여럿이 모이게 되면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힘이 발동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적 실재'를 떠올릴 수 있다. 예컨대 대학교에서 과잠을 맞출 경우, 개개인이 단순히 새로운 옷을 구매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담기고,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개인뿐만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유발되는 이 사회적인 힘 에 대해서도 글로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성스러움은 신에 대한 숭배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이 세계에 들어차 있는 삶의 의미, 혹은 형이상학적 배후, 즉 모든 현상에 의의를 부여하는 실체를 뜻한다. 어떤 이에게는 종교가,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어떤 이에게는 예술이 성스러움으로의 길을 열어준다.
나는 성스러움이 진정함(眞), 선함(善), 아름다움(美)보다도 우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모든 진리, 도덕, 미적 속성은 결과적으로 성스러움을 지향한다. "그래, 그게 옳지"라고 덤덤히 인정하게 되는 내용보다는 읽어내려가면서 그 통찰력에 감동받는 고전들이 더욱 진리에 가깝다. "걘 정말 착해"라고 무심코 말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그 헌신과 정의감이 진심으로 눈물겨운 이들이 더욱 선함에 가깝다. "참 예뻐"라고 내뱉고 말 그림보다, 그 앞에 서서 몇 분이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색채와 형태로부터 전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더 아름답다. 즉 모든 가치의 최고 형태는 성스러움, 즉 '의미있음'이다.
나는 글로써 이 세계의 의미를 파헤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작스레 고백하자면 나의 꿈은 소설 쓰는 사회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각박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그게 뭐냐고, 어떻게 돈은 벌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절실하다. 소설가로서든 아니면 학자로서든 나는 반드시 인간, 사회, 성스러움에 대해 쓰고 싶다. 그 셋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나는 내 안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