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유토피아'를 위한 공상
‘가치’는 아무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무언가가 가치 있으려면 특정한 효과를 자아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물에도 가치가 부여되려면, 다음 다섯 가지의 효과들 중 적어도 하나는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첫째는 내재적인 유용성이다. 예컨대 기록을 가능케 하는 연필, 소지품을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방, 많은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 등은 그 자체만으로 실용적이다.
둘째, 사회적인 유효성이다. 자체적으로 유용하든 그렇지 않든, 해당 사물을 통해 중요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발생한다면 가치 있다고 봐야 한다. 예컨대 돈은 그저 종이조각에 불과하지만 사회적 합의에 의해 실효성을 부여받아 경제적인 교환 행위를 위해 사용된다. 다른 예시로 학생증이나 운전면허증, 상장, 훈장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심미성이다. 이는 사물의 형태나 색상 등이 미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잘 그린 그림은 내재적인 유용성도 사회적인 유효성도 없지만(물론, 미술품을 투자처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경제적으로 유효하겠지만) '아름다운' 사물로서 가치가 있다. 예쁜 결혼반지의 경우 심미성의 효과도 만족하고,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 혹은 상태를 드러내므로 사회적인 유효성 효과도 지닌다. 이 속성은 소지 주체의 주관적인 선택과 판단에 의존한다.
넷째, 심리적인 쾌감이다. 쾌감엔 안정, 성적인 쾌락, 편안함 등이 속한다. 물건을 통해서 긍정적인 마음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때 그 사물은 가치 있다. 실질적인 용도는 없지만 잘 때 꼭 안고 자는 곰인형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때, 쾌감과 심미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어두운 현실을 그리는 사실주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은 심리적 쾌감 효과가 아니라 심미성 효과를 높이 산 경우이다. 다만 상식적으로 두 상태가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다.
마지막은 초월적인 권력성, 즉 성스러움이다. '초월적'이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고, '권력성'이란 주체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율적으로 영향력이 행사된다는 뜻이다. 성스러운 사물의 의미에 대해 조금만 더 고찰해보면,
1. 함부로 대할 경우 나를 징벌하므로, 두려워함
2. 잘 간직할 경우 내게 행운과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음
3. 잘 간직할 경우 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줌
4. 보상이 있다고는 믿지 않으나, 단순히 의무감을갖고 성스럽게 대함
5. 조상에 대한 효심 및 귀신에 대한 경외심을 상징함
6. 신성한 존재를 표현하거나 숭배하는 데에 쓰임
내가 상상할수 있는, 좁은 의미에서 ‘성스러움’의 내막은 이 여섯 가지 정도이다. 넓은 의미로 확장하면 삶과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성질을 성스러움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본래 페티시즘이란 종교학적 개념이 적용된 사물들 - 예컨대 서양인들에게는 무용해보였던 아프리카인의 가죽 주머니 - 의 경우 성스러운 효과 때문에 가치 있었다. 인간은 행운을 부르거나 불운을 막고 싶어 하지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따라서 사물에 초월적인 권력을 부여해서 숭배함으로써 미지의 영역마저 제어하려 한다. 그러한 통제의 노력이 전통으로 굳으면 숭배 행위의 동기 –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하자 – 보다 사물 자체의 권력이 우세해져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다.
결혼반지의 예시처럼 대부분의 경우 이 다섯 가지 효과들은 서로 결합되어 나타난다. 다양한 효과들이 중첩될수록 사물의 가치는 질적으로 높아진다.
Cover image: Maria van Oosterwijik, Vanitas Still life, 1668
본 글은 2015년 2학기 방원일 교수님의 '원시종교' 수업에 제출된 코멘터리 중 일부를 가져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