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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Apr 24. 2016

니체의 독자


 철학사를 하나의 돌탑 비유하고자 한다. 저명한 학자들은 저마다의 바위를 기존의 돌더미에 얹어 탑을 높인다. 이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은 바위와 바위 사이의 거대한 공허를 메우며 돌탑을 더욱 공고히 한다. 이런 식으로 철학자들은 새로운 바위를 얹거나, 바위들의 틈에 돌멩이를 끼워넣음으로써 서로 협력하여 철학사를 만들어나간다.


 니체의 바위는 어떤 모양일까? 이에 대해 난 엄청나게 거대한, 그리고 구멍이 엄청나게 많은 현무암을 생각한다. 전통적인 형식을 파괴하는 아포리즘, 난무하는 비유, 종종 인격모독의 형태를 띠는 논증은 그의 글을 난해하게 만든다. 니체의 결정적인 주장과 주장 사이에는 골짜기와 같은 간극이 존재하고, 철학자들은 니체의 책에서 드러나는 '학문적인 구멍'을 메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니체는 많은 학자들이 자신을 해설하고, 자신을 체계화시키고, 자신의 글에 주석을 달고, 자신에 대해 엄밀한 논문을 쓰기를 바랐을까? '니체'라는 하나의 견고한 진리의 성벽을 쌓는 일에 동의했을까? 어쩌면 니체는 자신의 글이 일종의 문학으로 읽히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이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문학,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완벽히 동일한 견해를 공유할 수 없는 문학, 절대 이론화될 수 없는 무한한 관점들의 총체로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의 제목 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실린 것으로 추측된다.


 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를 위한 책이자 누구도 위하지 않는 책(영역하면 A book for everybody and nobody).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과 관련하여 수업 시간에 제출할 에세이를 쓰면서 니체의 의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니체에 대해 학술적인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나는 그가 원하던 괴물 같은 독자일까? 니체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그의 책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Cover image: 에드바르드 뭉크가 그린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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