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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May 10. 2023

훌륭한 강아지 홍보,영업사원(?)



 

제주도 여행길에 한 카페를 찾았다.

바다 뷰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고 풍광 좋은 곳도 아니었다. 운전을 하다가 피곤한 몸을 잠시 달래기 위해서 들릴 만한 도로변에 위치한 곳도 아니었다.

집이 듬성듬성 늘어서 있는 시골 마을이었으며, 게다가 왕복 2차선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길을 300여 미터나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요즘은 인터넷과 SNS, 내비게이션의 힘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좀처럼 없는 후미진 곳에서 영업을 하는 카페나 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브런치 카페는 좁은 길을 곡예하듯이 10여분이나 운전해 달려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주위에 집도 없고, 숲에 둘러싸여 있어 누가 이런 곳에 올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갔는데, 웬걸 입구에 대기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카페나 음식점을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분위기가 좋거나 주위 경관이 매력적인 곳이다든가, 커피 맛이 특출 나거나 음식이 소문난 맛집이든가 하는 경우다.

그러나 내가 찾은 이 카페는 그런 것에 부합되는 게 한 가지도 없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지 강아지 때문이었다. 손님에게 친절한 강아지에 대한 정보를 SNS가 알려줬고, 딸애와 나는 직접 보고 싶다는데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골든레트리버 한 마리가 바로 앞에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털 손질이 잘 되어있고 윤기가 흐르는 깔끔한 외모였다.

이 녀석이 SNS에 얼굴을 올린 주인공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나에게 바짝 다가서 코로 몸을 가볍게 터치하기도 하고, 약간 입을 벌리기도 했는데, 그 모습은 반갑다고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모양새였다.

아내와 딸애가 차에서 내리자 강아지는 다가서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손님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룰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내와 딸은 몸을 낮추고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한 후 머리와 등을 쓸어주기에 바빴다.

강아지는 몸까지 흔들며 꼬리를 격하게 흔드는 것으로 보아 만나서 반갑다고 진심을 전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첫 만남의 인사를 나눈 강아지는 우릴 보고 뒤따라오라는 듯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자연석을 깔아 만든 몇 개의 계단이 있었는데 먼저 올라가서는 조심하라는 듯 몸을 돌려 지켜보았다.

우리가 계단에 오르자 다시 앞장서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갔다.

강아지는 카페 출입문 앞에 다다르자 빤히 나를 쳐다보더니 옆으로 비켜섰다.

다 왔으니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 같았다.

강아지의 목을 만져주며 같이 들어가려 했지만 꼬리만 흔들뿐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주인이 실내 출입을 금지시킨 듯했다.

 

카페는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는데 반듯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다. 오래되었을 집을 리모델링해서 현대적인 분위기로 탈바꿈시켜 놓은 기술이 놀라웠다.

창가에 놓인 의자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잔디가 깔린 앞 뜰에 시선을 주었다. 꽤 넓은 뜰인데 담장 가까이 세 개의 테이블이 충분한 간격을 두고 놓여있었고, 각각 네 개의 의자들이 딸려 있었다.

각 테이블에는 두세 명씩의 손님들이 차지하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 테이블의 젊은 여자 손님 두 명과 신나게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손님이 번갈아 가며 공을 멀찍이 던져주면 빛의 속도로 달려가 물어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같은 행동에도 싫은 기색 없이 같은 스피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손님 한 명이 의자에 있던  터그 놀이 장난감을 들어 올려 흔들어 보이자 강아지는 입에 물고 있던 공을 놓고는 그것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잡아당기기도 하고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빼앗으려 용을 쓰고 있었다. 여자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두 손에 힘을 집중시켜 좌우로 당차게 당기고 있었다. 강아지나 사람이나 조금의 양보도 없이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이 필사적이었다.

우리는 그 광경을 영화관에서 스크린에 집중하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바라만 봐도 덩달아 신이 나서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강아지와 터그 장난감 놀이를 하던 손님이 힘이 소진된 듯 비척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아지는 자신의 소임을 다 했다는 듯이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3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과 여자손님 두 명이 있는 테이블이었다.

손님들은 강아지와 악수를 주고받고 하이 파이브를 하더니, 강아지가 귀찮을 정도로  몸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지만, 강아지는 뒤로 빼지 않고 꿋꿋이 견뎌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만져주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잔디밭에 벌렁 누워서 좌우로 몸을 뒤척이며, 입을 벌려 손님의 손을 잘근잘근 깨물기도 했다.

손님 중 여자 한 명은 함께 놀아준 강아지에게 답례라도 하듯이 준비해 온 간식을 주며 자신의 이마를 강아지 머리에 대고 부비기도 했다.

 

마지막 테이블은 젊은 커플이었는데 머리를 가까이 맞대고 무언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아지가 다가가자 남자는 머리를 한번 슬쩍 만져주고는 다시 여자를 향해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강아지는 잠시 그들의 동태를 살피더니, 이런 경우에는 조용히 기다려주는 게 상책이라는 듯이 그 자리에 길게 엎드렸다.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전생에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도 부모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독차지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맑고 순한 눈으로 주인과 가족을 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행동은 아이들과 똑같다.

하기야 현세에도 강아지를 사람으로 취급하는 견주들이 많다. 이름대신 우리 아기라고 부르며 자신을 강아지 엄마, 아빠. 혹은 언니, 오빠, 누나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비싼 간식을 사기 위해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고,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도 시켜주며,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고급스러운 애견카페에도 데려간다. 체계적인 사회성 교육을 위해 유치원에 보내기도 한다.

 

이곳 카페의 강아지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 카페를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홍보 모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가족이 강아지를 보기 위하여 찾아온 것처럼 대부분의 손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아지는 주차장까지 달려 나와 반갑게 손님을 맞아주고, 카페까지 정중하게 안내해 주었다.

성격이 활달하여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며, 손님들마다 맞춤형으로 열과 성을 다하여 상대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강아지는 홍보와 영업사원(?)의 자격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휴식을 취한 후, 카페를 나서는데 홍보, 영업사원(?)이 보이질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건물 옆에 강아지 집이 보였고, 그 앞에 편한 자세로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가 소리를 지르며 오라고 손을 까불렀다. 총알처럼 달려올 줄 알았는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 아니 저 녀석 왜 저래? 삐쳤나?”

계속 손을 까부르고 오라고 소리를 지르자 강아지는 아예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처음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으나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떠나는 것이 서운해서 즉, 이별이 아쉬워서 배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에 미치자 녀석이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떠날 때, 차 한 대가 주차장을 향해 달려왔다.

운전하면서 백미러를 보니, 어느새 홍보, 영업사원(?)이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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