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다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을 발견했다. 원래 칼라로 되어있던 책표지의 그림은 색이 날아가 모노크롬처럼 보였다. 갈색 톤으로 농담만을 달리하고 있었다. 한 눈에도 꽤 오랫동안 책장에 숨어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여실이 느낄 수가 있었다.
평소 소설책을 읽은 후엔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는 습관이 오래전부터 생활화되어 있었는데, 이 책이 책장에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책을 펼쳐 들고 목차를 훑어본 후, 건성건성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이 책은 작가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적인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인 1940년대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하여 살면서, 가족이 겪은 해방전후의 고단한 삶과, 6.25 전쟁 발발 후 경험한 참혹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두운 무대에 한줄기 조명을 받은 부분처럼 뚜렷하게 머릿속에 각인된 곳이 있었다.
싱아에 관해서 서술한 부분이었다.
작가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게 된 어린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기가 막막했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가 버거웠다.
봄이 되면 아이들이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었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작가도 호기심에 아카시아 꽃을 먹었다가 비릿한 냄새에 속이 뒤집히고 말았다. 속이 메슥메슥한 것을 진정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먹곤 했던 싱아가 떠올랐다. 신맛과 달달한 맛, 개운한 맛이 있는 싱아를 먹으면 뒤집힌 속을 금세 달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작가는 싱아를 찾기 위해 집에서 가까이 있는 산으로 달려갔다.
작가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싱아? 그게 뭐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 외국어인가?’
많은 사람들은 싱아가 뭔지 몰라 머리를 갸웃거릴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써 식물의 이름이다. 지역에 따라서 수영, 수엉. 시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마디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고향에는 논과 밭 둑, 벌판, 산에 가면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싱아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대가 연하고 통통한 싱아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 입에 넣어 씹으면 새큼하고 달착지근하며 개운한 맛이 제법 먹을만했다.
싱아가 가장 맛이 좋은 시기는 아카시아 꽃이 피어날 즈음이어서, 주위에 아이들은 아카시아 꽃을 따서 송이채 먹고는 깔끔한 맛의 싱아를 반찬처럼 씹어 삼키곤 했다.
나는 아카시아 꽃은 특유의 비릿한 향이 역겨워 입에 대지 않았지만, 싱아는 거부감 없이 곧잘 먹곤 했다.
가끔은 두고 먹을 요량으로 싱아를 한 움큼 꺾어 집에 가져오기도 했다.
먹을 것이 귀하고 배고파서 가 아니었다. 우리 집은 토지가 꽤 있어 머슴(일꾼)들을 몇 명씩이나 두고 있였고, 인근에서 부잣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었다.
엄마는 봄이면 살이 꽉 차고 알이 가득한 꽃게와 주꾸미를 사다가 가마솥에 가득 쪄 놓아 언제나 먹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쑥으로 쑥 개떡도 하시고 쑥 버무리도 바구니에 그득히 해 놓으셨다. 단 팥을 가득 넣은 찐빵도 자주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보다는 싱아의 시큼하고 달콤한 맛이 더 좋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집에 맛있는 게 쌔고 쌘데 그런 건 왜 먹어?! 그런 풀 먹으면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뿔이 나고 소가 돼서 음매에ㅡ 하고 울게 돼”
이렇게 놀리곤 하셨지만, 나는 쉽사리 싱아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살면서 나는 싱아에 대한 기억이 점점 잊혔고, 끝내는 하얗게 지워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90년대 초였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손에 책을 노상 달고 살았던 나는 출판사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싱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 나며, 불현듯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고향에도 싱아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소설책을 읽고 나면 남에게 건네곤 하던 내가 이 책을 보관하게 된 연유는 아마도 싱아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고향을 상기시켜 주었으니까.
나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은 후 고향을 찾았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곳에는 일가친척이 한 명도 살지 않고, 오랫동안 내왕이 없던 곳이라 낯선 땅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들판은 파헤쳐져 집들이 들어서고, 둑은 시원스레 농로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산은 옛 모습 그대로 마을을 포근히 품어 안고 길게 누워있었다.
나는 산에 들어서자마자 매의 눈으로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훑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풀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익숙한 풀이 눈에 들어왔다. 줄기에 마디가 있고, 약간의 붉은색을 띤 싱아였다. 그것도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자생하고 있었다.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되찾기라도 한 듯 반가웠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골을 타고 내려온 산들바람에 싱아의 잎사귀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 모습은 마치 나를 환영해 주기 위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봄마다 싹을 틔우고 자랐을 싱아가 고맙기만 했다.
만약 싱아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내 어린 시절의 한 추억을 도둑맞은 것처럼 허탈했을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어쩌다 한 번씩 고향에 들르곤 했다. 먹고사는 일에 엮이고,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하느라 시간 내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추억을 먹고사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상황이 많이 변했다. 부쩍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고 고향 생각에 젖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래전에 하늘로 먼 여행을 떠나신 부모님의 살가운 체취도 코끝으로 느끼고 싶어 진다.
그런 연유로 고향을 찾는 횟수가 잦아진다.
고향에 가면 거기엔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고, 엄마 손에 매달려 읍내 장에 가느라 하얀 신작로를 걸으며 재잘거리는 내 모습을 본다.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엄마와 손가락이 파란 물이 들도록 화단을 가꾸고, 대청마루에 엄마 무릎 베고 누워 동화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든 내 모습도 본다.
고향에 가면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준 싱아가 있는 산도 어김없이 찾는다.
그렇다고 싱아를 먹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싱아는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볼 수 있고,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