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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Apr 05. 2023

초심




20여 년 동안 나는 고집스럽게 K 커피숍에서 로스팅 한 원두를 사다가 커피를 내려 마신다. 외국에서 사 온 원두나, 체인점을 줄줄이 달고 있는 국내 대형 커피숍, 혹은 인기 있는 개인 카페에서 사 와 마셔봤지만 이 집처럼 정성 들여 로스팅 한 원두는 없었다. 조금만 시간을 앞당겨도 늦춰도 맛의 차이를 가져오는데 이 집은 맛이 한결같았다.

K 커피숍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 년 전 일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산책하던 중 새로 오픈한 커피숍을 발견했다. 개업한 집은 한번 들러보는 습관이 있는지라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40대 부부가 정중하게 인사하며 반겼다. 나는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실내를 둘러봤다. 실내는 매우 협소했다. 15 제곱미터도 채 안 될 것 같았다. 인테리어도 부부가 한 듯 초라했고, 테이블도 허술했으며 의자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앉으면 망가져 같이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주위에 시설 좋은 카페가 줄줄이 늘어서 있고, 더군다나 도로 하나만 건너면 학교 교실의 두 배가 넘는 크기에 세련된 실내장식을 한 유명 커피 체인점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런 곳에 누가 올까 염려스러웠다.


주인 부부가 정성 들여 내린 핸드 드립 커피는 놀라울 정도로 향이 좋았고 맛이 깊었다. 그동안 커피숍에서  마셔본 것 중에 이런 맛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잔을 비우며 맛있다고 하자 여주인이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컵 가득 리필해주었다.

커피숍을 나오는데 부부는 밖에까지 따라 나와서 감사하다 안녕히 가시라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커피숍을 수도 없이 다녀봤지만 이런 친절함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 아내와 나는 밖에서 커피를 마실 일이 있으면 이 집을 찾았다. 커피 맛이 특출 나기도 했지만, 힘든 사람들에게 한 잔이라도 팔아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K 커피숍은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중시 여기는 젊은이들은 보기 힘들었지만, 커피 맛을 즐기는 사람들과 인간적인 정이 그리운 사람들이 찾는 것 같았다.


2000년대 초, 개인 커피숍을 창업하는 것이 인기였다.

K 커피숍에서는 창업을 위해 바리스타 자격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모아 교육시켰다. 부부가 워낙 꼼꼼하게 지도해서인지 교육받은 사람들은 쉽게 자격증을 취득했고 개인 카페를 속속 오픈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오픈한 카페에 저렴한 가격으로 로스팅한 원두를 공급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두 주문량이 많아져 대량으로 로스팅할 수 있는 기계와 장소가 필요하게 되어, K 커피숍은 2 백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확장 이전했다. 작은 커피숍을 오픈한 지 채 1년도 안되서였다.

새로 이전한 곳은 100 제곱미터 이상되는 공간이었지만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과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몇 년이 흘렀다. 커피숍은 단골손님들로  언제나 실내를 가득 채웠다. 주인 부부는 여전히 손님에게 처음 오픈 했을 때의 그 마음 그대로 정성을 다했다.

어느 날 부부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멀지 않은 시골에 3층 건물을 완공하고 커피숍과 로스팅 장소, 그리고 커피 체험장을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건물 앞 넓은 땅을 사들여 커피나무까지 심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노력이 가져온 결실에 큰 박수를 보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상가에 1년 전에 커피숍이 문을 열었다. 개업한 지 며칠 지나고 아내와 나는 커피를 마시러 그곳에 들렸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실내장식도 깔끔했고 의자도 편했다.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커피 가져가세요 하는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주인 여자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실내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당 주인이 커피를 테이블에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들고 와 마시는데 그저 그런 맛이었다. 직접 로스팅 한 원두도 아니고 어디서 구입해 와 사용하는 것 같았다. 웬만하면 커피를 남기는 성격이 아닌데 다 마실수가 없었다. 커피숍을 나오는데 한마디 인사도 없었다.

나는 주인이 장사할 자세가 안 되어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세대수가 채 500이 안 되는 아파트 단지에서 무엇보다 친절이 생명인데, 손님이 줄을 서 기다리는 대형 커피숍처럼 운영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욱이나 정문을 나서면 대형 커피숍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커피숍은 채 일 년도 안되어 문을 닫고 말았다.


나는 음식점이나 커피숍을 이용할 때면 K 커피숍을 생각하곤 한다. 무릇 자영업자들은 이 부부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자영업자들, 특히 음식점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처음 계단을 오를 때는 신중을 기해 조심스럽게 오르지만 (우리 아파트 단지 내 오픈했던 커피숍은 아예 첫 발자국부터 평지를 걸었지만). 어느 정도 오르면 주저앉아 버린다. 그동안 고생을 할 만큼 했으니까 모든 게 알아서 잘 돌아가겠지 안주해 버린다.

잘 나가던 음식점이나 카페가 어느 순간부터 손님이 줄어들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K 커피숍이 계속 손님들이 늘어나고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은 그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까마득한 계단을 이미 올랐음에도 불고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오늘도 한 계단 한 계단 최선을 다해 오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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