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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8. 2023

낯선 유기견과 함께한 산책





몇 년 전 가을, 아내와 나는 공주 자연 휴양림을 찾았다. 하늘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처럼 푸르렀고, 잘 조성된 꽃밭에는 크기와 색이 다른 국화꽃들이 한결같이 머리를 들고 유혹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위에 서있는 키 큰 나무들은 불이 타오르는 듯한 가을의 꽃들을 풍성하게 매달고 있었다.

꽃들과 나무들을 맘껏 눈과 마음에 담은 후, 산 허리를 따라 길게 뻗어있는 산책 코스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강아지 한 마리가 불과 6-7m 앞에서 미동도 없이 서서 빤히 우릴 올려다보고 있었다.

몸집이 크지 않은 믹스종에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검은 강아지였다. 주인을 따라 산책 나왔으려니 개의치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은 방향을 바꾸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우리 앞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우리와 산책을 나온 것처럼 수시로 아내와 나의 동태를 살피곤 했다.

녀석은 산모퉁이를 돌 때면 시야에서 벗어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몸을 돌려 멈춰 서서 우리를 기다렸으며, 어느 땐 갔던 길을 되돌아와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녀석은 목욕한 지가 오래된 듯 털이 뒤엉켜 있었고, 이물질도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몸이 수척해 보였다. 주인이 있어 관리를 받는 강아지는 아니었다. 버림받은 게 분명했다. 

몹쓸 사람들 같으니...... 어떻게 저렇게 어리고 귀여운 것을 이런 곳에 유기를 할 수가 있담.

강아지 주인의 무책임한 행동과 비정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측은한 생각에 등이라도 쓰다듬어주려 몇 차례 가까이 접근하려 했지만 녀석은 손이 닿을 거리는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녀석은 배가 고픈 듯 길바닥에 먹을 것이 떨어져 있지나 않나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그날따라 싸 온 음식을 말끔히 비워 배낭 안은 비어있었다. 아내와 나는 안타까워했다. 매점에 도착하면 먹을 것을 사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나의 걸음은 일정하지 않았다. 주위에 예쁘게 물들어 마치 색 전구 등을 켠 것처럼 반짝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느라 걸음을 수시로 멈추고, 멀리 보이는 마을에 시선이 빼앗겨 걸음 느려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강아지는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주고, 늦추기도 하며 우리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서 산책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다다랐다. 이제 매점이 가까이 있었다. 빨리 가서 강아지 먹이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녀석은 자신의 임무가 끝났다는 듯이 우리와 한번 눈을 맞추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름을 알 수 없고 급한 마음에 강아지야 이리 와, 멍멍아 이리 와, 깜둥아(검은색이라서) 이리 와, 바둑아 이리 와, 안타깝게 부르며 손을 까불렀지만 되돌아오지 않았다. 

마음이 찡했다. 굶주린 배를 채워주고 싶었는데…….

 

아내와 내가 차를 타기 위하여 주차장에 내려왔을 때, 정문 옆에 있는 매점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우리와 산책한 그 녀석이었다. 

서둘러 매점으로 달려가 급한 대로 눈에 보이는 빵을 몇 개 샀다. 물도 한 병 사서 쓰레기 통에 있는 빈 사발면 용기에 따라서 강아지가 있는 가까 바닥에 놓았다. 

아내가 빵을 하나 던져주자 녀석은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씹지도 않고 삼켜버렸다.

아내는 급히 먹어 체할까 봐 물을 마실 시간을 주려고 잠시 기다리고 있었는데, 녀석은 허기가 채워지지 않은 듯 아내가 들고 있는 빵을 갈망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빵 하나를 다시 던져주자 누구한테 빼앗길세라 입에 물고는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물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였다. 

 

매점 주인의 말에 의하면 3개월 전에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유기를 단다. 

강아지는 주인을 기다리느라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강아지가 눈에 보일 때면 사료를 챙겨주지만경계심이 강하여 가까이 접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수목원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수차 구조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몇 달 후, 그곳을 다시 찾게 되어 먹을 것을 챙겨 갔지만 녀석을 만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구조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굶주림으로 희생되었거나 다른 큰 동물의 공격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강아지를 처음 만난 지 일 년이 흐른 후였다. 어김없이 가을이 왔고, 아내와 나는 단풍이 아름다운 그곳을 다시 찾았다. 여느 때처럼 산책 코스를 걷고 있는데, 두 길이 맞닿는 아래쪽 길에서 빤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다.

앞에 서 있는 검은 강아지는 우리와 함께 산책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아내와 나는 반가운 마음에 환성을 지르며 손을 까불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녀석은 우리한테 오려는 듯 몇 걸음을 옮겨놓았으나 뒤에 있는 누렁이 강아지는 경계하는 듯 못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녀석은 뒤돌아 누렁이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안심해좋은 사람들이야. 언젠가 내가 허기졌을 때 맛있는 빵도 사 주었는걸

이런 말을 하며 안도시키는 것 같았다.

한동안 경계를 하던 누렁이 강아지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녀석들은 우리 가까이로 왔다.

반가움으로 쓰다듬어 주려고 다가갔지만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며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녀석은 그동안 몰라보게 성장했고 건강해 보였다. 

주인 없이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외로움을 용케도 잘 버텨냈구나. 이젠 바람막이가 되어줄 친구까지 생기고……

나는 어려움을 꿋꿋이 견뎌낸 녀석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아직까지도 떠돌이 생활하는 것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어서 구조되고 좋은 주인을 만나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텐데. …..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산허리로 난 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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