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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8. 2022

어머니, 꽃, 그리고 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다. 아주 조그만 집이다. 너무 좁아 답답함을 느끼실 공간이다. 벌써 그곳에서 혼자 사시는지가 10년이 넘으셨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가엔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이른 봄 할미꽃이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피어나기 시작하면, 곧이어 진달래꽃이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이기라도 하려는 듯 불길처럼 타오른다. 장마가 물러나면 원추리 꽃이 노랗게 온통 산을 물들이고, 가을이면 해국, 구절초, 용담, 쑥부쟁이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난다.  

오솔길을 따라 어머니 집을 찾아갈 때면, 나는 계절에 따라 피어난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허리를 숙이든지 아니면 쪼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본다. 

‘넌 누굴 보라고 호젓한 곳에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있느냐? 색깔이 곱기도 하구나.’ 혼자서 중얼거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난 놀라곤 한다.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을 그대로 떠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처럼 꽃을 좋아하셨던 분도 드물 것 같다. 나 어렸을 적 집 앞 화단엔 다양한 꽃들이 빼곡했다. 이른 봄부터 어머니는 씨를 뿌리는 일로 시작하여 모종 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줄을 매어 줄기가 뻗어 나가게 만드셨다. 그런 어머니의 두 손은 항상 녹색 물이 짙게 배어 있었다.

꽃이 없는 겨울철엔 색 습자지를 접고 말아서 예쁜 꽃을 만드셨다. 주로 장미꽃과 국화꽃이었다. 사철나무를 잘라 커다란 화병에 꽂고는 만드신 종이꽃들을 매달아 대청과 방안에 놓으셨다. 그리고는 수시로 그것을 들여다보시곤 하셨다. 아마도 꽃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그렇게 해서 달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꽃을 좋아하시는 만큼 집안 꾸미기를 좋아하셨다. 꽃 같은 나이에 시집올 때 가져오신 자개장과 꽃무늬 이층장을 시간 나실 때마다 닦고 기름 쳐 항상 반지르르하게 만드셨다. 대청과 방에는 민화와 풍경화, 사진들을 보기 좋게 안배해 거셨다. 방문에 창호지를 바르실 때에도 손잡이 주위엔 단풍나무, 은행 잎이나 코스모스 꽃과 잎사귀로 예쁘게 장식하셨다.  


내가 왜 그림을 하게 되었을까? 그림의 소재가 왜 하필이면 자연일까? 그것도 꽃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건 전적으로 꾸미기를 좋아하셨고, 꽃을 유달리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난 그림의 소재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빌딩도 그리고, 인물도 그리고, 동물도 그리고, 추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완성 후 바라보면 낯설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려놓은 것 같았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이 흔들리지 않게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 있는 오솔길을 따라 숲을 빠져나오자, 어머니 집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따라 집이 더욱 작아 보인다. 저토록 궁색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실 때 나는 슬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멀리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시장철 갖가지 꽃으로 흘러넘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천국으로.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곳에 가게 되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드디어 어머니의 집 앞에 다다른다. 

가져온 꽃다발을 내밀지만 집엔 인기척이 없다.

나는 알고 있다. 어머니는 답답한 집에 누워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천국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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