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준 Oct 18. 2022

우담바라

     

우리 집 베란다 유리창에 우담바라가 피었다. 눈처럼 하얀 꽃이다. 그것은 너무 작아 흰 선 같았다.  20송이의 꽃이지만 그 면적은 바둑알 크기 만했다. 신기하게도 그 보일락 말락 한 꽃마다엔 1.5Cm 정도의 거미줄 같은 가늘고 반짝이는 줄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담바라를 발견한 것은 우리 집에 놀러 온 초등학교 5학년짜리 사내 아이였다. 창 밖을 내다보던 녀석이 ‘우담바라다’ 소리쳤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것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눈은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리 작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아마도 녀석이 아니었더라면 그 자리에 우담바라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설사 그것을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우담바라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오물이 뭍은 것인 줄 알고 눈 여겨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삼천 년 만에 한번 피어난다는 신령스러운 꽃, 그런 꽃이 우리 집에 피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말보다 먼저 우리 집에 핀 우담바라를 화제에 올렸다. 그들은 한결같이 집에 행운이 찾아올 거라고 얘기했다.

행운? 우리 집에 찾아올 행운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행복감에 싸였다.

나는 아침마다 눈을 비비며 베란다 앞으로 가서 우담바라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마다 건재한 꽃을 볼 때면 보이지 않는 행운의 기운이 집안 가득히 흘러넘쳤고, 내 마음은 풍선처럼 하늘 높이 날았다. 


나는 그 꽃이 우리 집에 아주 오래오래 있어주기를 염원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에 휩쓸려 사라질까 봐,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날려버릴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장대비에도 모진 바람에도 우담바라는 건재했다. 그 보일락 말락 한 가는 줄기가 무슨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길래 그토록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겨울이 되었다.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모든 게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나의 소원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그 꽃은 그 자리를 용케도 잘 지키고 있었다. 

우담바라를 발견한 것은 10월 10일이었고 지금은 새해가 시작 되었으니 거의 두 달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언제부터 거기에 피기 시작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수명이 짧은 꽃은 아니었다. 

겨울을 넘기면서 꽃의 색은 연한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꼿꼿하게 수평을 유지하던 줄기들은 균형을 잃었다. 난 그런 꽃을 보며 몸 한구석에 상처가 난 것처럼 욱신욱신 아팠다. 

나는 그 후로 꽃을 보는 것을 포기했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소리 없이 다가서고 있는 지금 그 꽃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우담바라가 베란다 유리창에 활짝 핀 모습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집안을 가득 채우곤 하던 보이지 않는 행운, 내 마음을 두둥실 띄워놓던 알지 못할 기운이 함께하는 것도 여전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 꽃, 그리고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