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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Jun 07. 2023

부모의 욕심이 자녀의 미래를 망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미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닐은 의사가 되길 바라는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힘든 학교 생활을 한다그러던 중 교내에서 공연할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 주인공으로 발탁된다닐은 연극 연습을 하면서 그 무엇을 할 때보다 행복하고 만족했으며연기에 자질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연극은 성공적으로 공연되고 닐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다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연극을 한 것에 화가 나 닐을 심하게 꾸짖는다닐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킬 계획을 세우며닐에게 반드시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자유롭게 창공을 날고 싶은 새가 새장 속에 갇힌 것처럼 질식할 것 같은 시간을 보내던 닐은, 결국 총을 자신의 몸에 겨누어 방아쇠를 당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닐 아버지 같은 부모가 대부분이었다

자녀들을 무조건 명문 대학에 입학시켜 놓고 보자는 일류 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적성이나 특기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인기 학과로 자녀들의 등을 떠밀었다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농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조차도 없는 자녀를오직 명문대 합격만을 위하여 농과대에 보내는 부모도 있었다문과계통에 관심 있는 자녀를 윽박질러 의대나 공대에 보내기도 했으며이과계통에 적성이 맞는 자녀를 법대로 등을 떠밀기도 했다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명문대의 꿈을 자식들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미래에 존경받는 직업을 가지고 명예와 부를 거머쥐고 꽃 길을 걷길 바라는 마음에서부모가 자식의 앞날을 설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아내와 나 역시도 그런 오류를 범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큰 딸애가 태어나자 장래를 우리 멋대로 설계했다훌륭한 피아니스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웅장한 홀의 무대에 조명을 받으며 당당히 등장하는 우아한 드레스의 피아니스트 모습,

신들린 듯 하얀 건반 위에서 자유자재로 춤추는 두 손,

풍부한 표현력으로 창조해 내는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  

연주가 끝난 후 관중들이 기립하여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막연히 딸애도 무대의 주인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더욱이나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들이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일등을 하여신문과 방송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면우리 애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기도 했다.

 

딸애는 여섯 살이 되면서 피아노를 시작했다원래는 더 일찍 시작하려고 했지만손가락 소근육이 발달이 덜된 상태라 무리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따랐기 때문이다

딸애는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한편실력 있는 선생을 섭외하여 집에서도 일주일에 2회 레슨 받는 것을 병행했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한 피아노는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연습시간을 늘렸고학년이 바뀔 때마다 점점 확대했다.  

레슨이 끝난 후에는 배운 것의 몇 배가 되는 시간을 연습했고다음에 배울 것을 예습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 있었다템포가 빗나가지 않게 메트로놈을 작동시키고악보를 넘겨주었으며곡이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연습을 반복하게 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밖에서 맘껏 뛰어놀면서 성장하는 시기이다큰애는 피아노를 배우느라 그런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다이래도 되나 하는 자괴감과아이에 대한 연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런 생각을 애써 잠재웠다.

 

일 년에 한 번씩 피아노 학원에서 정기 연주회가 있었다조그만 공간에서 치러지고 참가자가 이십 명 이상이나 되었다그런데도 마치 딸애만을 위한 독주회처럼 드레스를 입히고분장까지 곱게 했다.  

인근에 살고 있는 친인척과 지인을 초대했다피아노를 연주하는 딸애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큰애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면 대단한 피아니스트라도 된 양 어깨가 우쭐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봄이었다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온 큰애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내가 물었다.

“…….”

무슨 일인데말을 해야 알지.”

“…….”

말해봐 어서.” 아내가 채근했다

나 피아노 안 할래.”

“…….?”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폭탄선언이었다. 5년 가까이 공들여 쌓은 탑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피아노 하기 싫은 이유가 뭐야?” 아내가 물었다.

“재미없어그냥 하기 싫어지겨워” 이 말을 하고는 큰애는 울음을 터뜨렸다.  

큰애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내와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으려고아니면 꾸중을 들을까 봐 두려워 속으로 억누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큰애의 예기치 않았던 선언이 무척 당황스러웠고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 들인 돈시간아이의 노력이 아깝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용기를 내서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밝혀준 큰애가 고마웠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계속 끌고 가다가 더 늦게 이런 일이 발생했더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하는 행동을 눈여겨보면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무엇을 할 때 행복해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큰애는 어릴 때부터 곤충이나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보기에 징그러운 곤충도 한 눈 팔지 않고 지켜보았고동물원에 가면 제 세상 만나듯이 활개치고 다니며 구경하곤 했다관심이 많은 동물 우리 앞에서는 한참 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행동을 지켜보기도 했다

책도 동물이나 과학에 관한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아이를 피아노 앞에 앉게 하고 많은 시간을 뒤에서 계속 떠밀기만 했으니 그 압박감과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큰애는 피아노를 그만둔 후 지금까지 건반을 두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아니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얼마나 질렸으면 그랬을까?

 

큰애가 피아노를 그만하겠다고 선언한 후아내와 나는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성이 맞고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뒤에서 격려하고 응원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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