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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Aug 02. 2023

워터스톤스와 반스 앤 노블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는 ‘책은 꿈을 꾸는 것을 가르쳐주는 진정한 선생님이다.’라고 했다. 

두 딸이 책을 읽으며 꿈을 꾸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면 꿈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될 테니까.

두 딸이 책을 가까이하게 해 준 곳은 런던에 있는 워터스톤스(Waterstones)라는 기업형 대형 서점이었다. 

런던에 살 때, 겨울에 시내 외출을 했다가 추위를 피하거나 휴식을 위해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점점 책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날씨가 보석같이 빛나는 날에도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입한 책들은 집에서 자연스럽게 독서로 이어졌다.

워터스톤스는 우리가 거주하던 집에서 가까운 윔블던 스테이션 앞에도 있었고, 거리는 좀 떨어지긴 했지만, 가끔 쇼핑을 위해 찾던 킹스턴의 쇼핑몰 벤톨 안에도 있었다. 하지만 런던 중심가인 피카딜리 서커스 역 주위에 있는 초대형 워터스톤스 서점을 가장 좋아했고 이용 빈도 또한 높았다. 서점 내 큰 카페가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뉴욕으로 떠날 때 아쉬운 것 중에 하나는 워터스톤스와의 작별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이 뉴욕에 와서 보니 규모와 시설면에서 손색없는 반스 앤 노블(Barnes and Noble)이란 서점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반스 앤 노블은 미국에서 최대규모의 서점으로 전국에 1000여 곳의 매장을 가지고 있었다. 맨해튼에도 여러 곳이 있었는데 규모가 각기 달랐지만, 나름대로 특색을 지니고 있어 어느 곳이나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반스 앤 노블은 유니온 스퀘어에 위치한 4층의 대형 서점이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묘하게도 넓은 바다 한가운데 배를 타고 보물을 찾아 헤매는 선장 같은 기분이었다. 

수없이 많은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곳을 헤집고 다니다가 관심이 있는 책이 눈에 들어오면 무인도에서 보물을 발견이라도 한 듯이 뿌듯했다.


우리 가족의 독서 취향은 각기 달랐다. 나에게는 당연히 미술서적들이고, 아내에겐 영문법이나 독해에 도움을 주는 책들이었다. 큰 딸은 미국의 역사나 세계사, 과학 서적이고, 작은 딸은 위인전기나 소설을 좋아했다. 

작은딸은 런던에 살 때 워터스톤스에서는 아동문학가 로알드 달의 작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가 쓴 작품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마틸다 등을 비롯하여 수십 권의 책이 있었다. 작은딸은 그의 책을 거의 섭렵하다시피 했다. 단시간 내에 읽기가 무리인 것은 구입해 집에 와서 읽었다.


영국의 작가 J.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장기간에 걸쳐서 출간되었다. 1997년 6월에 첫 작품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마법처럼 무섭게 책이 팔려 나갔다. 그다음 해인 1998년 7월에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 그다음 해인 1999년 7월에는 3권째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출간되었다.

해리포터가 출간되어 서점에서 판매되는 날은 책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우리가 런던에서 생활할 때 워터스톤스 서점에 가면 해리포터 시리즈 1.2.3권이 넓은 공간에 겹겹이 진열되어 있었다. 

큰딸은 원래 판타지 소설은 좋아하지 않아 별 관심이 없었고, 작은 딸은 로알드 달의 작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밖이었다.

런던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후 반즈 앤 노블을 드나들기 시작할 때, 해리포터 시리즈 4권째인 해리포터와 불의잔이 출판되었다. 여기도 워터스톤스처럼  진열대에 해리포터 시리즈들이 겹겹이 쌓여 있거나 서가에 꽂혀 있었다.


싱그러운 사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다. 공원과 거리의 나무들은 활짝 핀 꽃들을 머리 위에 무겁게 이고 있고, 하늘은 발을 담그고 싶은 맑고 투명한 파란색이었다. 

바람처럼 새처럼 자유롭게 멀리 날아보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페리(Ferry)에 몸을 실었다. 맨해튼 남쪽 끝자락과 스태튼 아일랜드를 24시간 무료로 이어주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배였다. 수시로 운행하는 데다가 걸리는 시간은 25분 정도여서 왕복을 해도 한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페리의 갑판에서 우리는 너른 바다 위를, 자유의 여신상 위를 바람처럼 새처럼 나르는 기분을 맘껏 만끽했다.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 우리는 반즈 앤 노블의 출입문을 힘차게 밀치고 들어섰다.


우리는 각자 흩어져 읽을 책을 고른 후 서점 안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안으로 모였다. 항상 붐비던 곳인데 그날따라 자리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눈부신 태양, 아름다운 꽃들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정신이 혼미해져 서점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밖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주문한 음료수를 마신 후 티슈로 테이블을 말끔히 닦아내고 각자 가져온 책을 위에 펼쳐 놓았다.

아내와 큰 딸, 나는 으레 읽던 범주의 책이었는데 작은딸의 책은 달랐다. 해리포터 시리즈 중 첫 번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이 책 너무 재밌다. 나 이 책 살래”

30여 분간 숨소리 없이 책에 몰두하던 작은딸이 입을 열었다.

“그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어렵지 않을까?”

내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언젠가 앞부분을 몇 장 읽은 적이 있는데 쉽지 않은 단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었기 때문이었다. 

“어렵지 않아. 너무 재밌어.”

작은딸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짧은 시간에 꽤 되는 분량을  읽은 상태였다. 


반스 앤 노블에서 해리포터 시리즈 1권을 구입한 작은딸은 책에 푹 빠져서 생활했다. 학교 갈 때도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보겠다며 가방 안에 챙겨갔고, 하교 후 집에 와서는 가방을 놓기가 바쁘게 책을 꺼내 들었다. TV에서 만화 방영시간이면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끌려갔는데 아예 틀지도 않았다. 밤에도 그 책에 매달렸다. 아내가 잠잘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늦은 밤까지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작은 딸은 이틀도 안되어 책을 완독 했다. 낮시간은 학교생활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였다.


해리포터 시리즈 1권을 사 온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반스 앤 노블에서 다음 편을 한 권씩 사 오는 게 일과가 되었다. 작은 딸은 그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영국에서 로알드 달의 책들에 정신 팔렸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영국에 갈 때 우리글로 된 초등학생용 세계 위인전과 세계 명작 소설을 가지고 갔는데, 그 책들을 읽긴 했지만 해리포터처럼 집착하지는 않았다.

작은 딸은 4주 만에 지금까지 출간된 해리포터 시리즈 4권을 전부 읽었다. 

아마 한꺼번에 책을 모두 구입했다면 일주일? 아니 그 보다 더 빠른 시간에 끝냈을지도 몰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글은 읽은 만큼 써지는 것인지 작은딸은 글쓰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Grade (학년) 5, 말에 쓴 에세이가 반에서 제일 잘 쓴 글로 선정되었다. 담임은 수업시간에 작은 딸이 앞에 나와서 발표하게 하고, 나중에는 교실 뒷 벽면에 계시를 했다. 

한국인의 밥상 예절이란 주제로 쓴 글이어서 서양인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었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잘 쓴 글로 선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 딸은 그 후에도 해리포터 새 시리즈가 출간되면 그날로 구입해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책을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본인 스스로도 한 권당 열 번은 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문장은 암기할 정도였다.

해리포터가 문학성이 있는 작품인지 아닌지, 교육적으로 도움을 주는 책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작은 딸은 그 책으로 인해서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책을 계기로 철학, 심리학, 역사, 종교, 문학. 과학,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해리포터에 무한 감사해야 할 일이다.

또한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영국의 워터스톤스와 미국의 반스 앤 노블에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서점들의 상황이 심각하다.

바람 부는 날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감소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몰려 있다.

규모가 작은 서점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체인점을 많이 거느린 2위의 서점 보더스(Borders)가 뿌리 채 뽑힌 지도 오래전(2011년에 파산) 일이다.

외적으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워터스톤스와 반스 앤 노블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잘 견뎌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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