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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7. 2022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학교가 병들어 가고 있다.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심각한 상황이다. 지각이나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수업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잡담, 딴짓을 하는 학생들이 다반사이다. 만만한 학생을 집단 따돌림을 하고, 다른 학생의 돈을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도 있다.

계단을 올라가는 여선생의 뒤를 바짝 붙어 거울을 치마 아래로 비쳐보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는 학생도 있다.

어느 남자 중학교에선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교단에 누워 판서하고 있는 여선생의 뒷모습을 사진을 찍는 동작을 해 보이고, 몇몇 학생은 제 자리에서 웃통을 벗어젖히고 낄낄대는 일까지 발생했다. 교사를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인식했으면 이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발생했을까.


79년도부터 98년까지 나는 한 사립 남자 중학교에 근무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생활이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은 선생의 말을 잘 따랐고,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들도 없었다. 지각, 조퇴, 결석하는 일도 드물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개근상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아파도 등교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해인가는 내가 맡은 반 전체 학생이 1년 동안 개근상을 거머쥐는 흔치 않은 일도 있었다.

물론 그때라고 크고 작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험 볼 때 커닝을 하고, 친구와 치고받고 싸우고, 담배를 피우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어떤 녀석은 여교사 화장실에 몰래 숨어 옆 칸을 넘겨보다 이를 발견한 여교사가 혼비백산하여 뛰쳐나오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학생 지도에 어려움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때는 교사의 권위가 살아있었고 학부모들이 전적으로 교사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지금과 2000년대 이전 학부모가 교사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 매년 신학기가 되면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그때 담임에게 이구동성으로 부탁하는 것은 우리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호되게 꾸짖고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학부모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교사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교에 득달같이 달려와서 마치 중죄를 저지른 범인처럼 몰아세운다. 

학생의 잘못을 꾸짖었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찾아와 수업 중인 여교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네까짓 게 뭔데 남의 소중한 자식을 나무라느냐고 행패를 부리고,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는 학생 체벌에 불만을 품은 학생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 교장실 기물을 부수고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마 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학생의 부모는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되었고 엄청난 벌금을 물고 풀려났거나 아니면 감옥에 보내졌을 것이다.


영화 친구 중에 남자 고등학교 교사로 분한 김광규가 폭력 학생을 손바닥으로 면상을 때리며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묻는 장면이 있다.

이 짧은 말속에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도대체 너의 아버지는 뭐 하느라 자식이 이렇게 삐뚤어진 생활을 하는데 그런 것 하나 눈치채지 못하고 방관하고 있느냐. 아버지라면 마땅히 가정교육을 잘해서 애가 번듯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관리 감독을 잘해야 할 게 아니냐. 애들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그것도 아버지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느냐.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이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함축해서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모자란다. 요즘은 맞벌이 부모가 많고 시곗바늘처럼 바쁜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자녀와 대화하고 휴일에는 야외생활 취미활동을 같이 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배려하는 마음, 공동체의 규율을 잘 지키는 마음가짐, 책임감을 가질 것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교사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학생을 나쁜 길로 몰아가는 교사는 없다. 부모 못지않게 학생이 바르게 성장하여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 교사의 마음이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 오래전에는 이럴 정도로 존경하고 예우했다. 지금같이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너무 고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교사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예나 다름없이 중요하다. 그래야 교사의 권위가 올라가고 학생들도 선생님을 신뢰하고 따를 것이다.

자녀 앞에서 교사들을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하고, 맘만 먹으면 교사 하나쯤은 금방 쫓겨나게 만들 수 있다고 하거나, 교사한테 매를 맞았다고 달려가 앙갚음을 한다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선생님을 얼마나 만만한 존재로 생각하겠겠는가. 

사나운 개가 사람을 물어 큰 부상을 입히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가끔 발생한다. 개가 어려서 입질을 시작할 때 견주가 귀엽다고 받아주어 점점 강도가 높아져 문제 견이 됐을 것이다. 처음 입질을 할 때 체계적인 교육이 따랐으면 이런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오냐오냐하고 감싸기만 하면 버릇이 더 나빠지고 결국 아이를 망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학교가 병들면 사회가 병들고, 끝내는 나라가 병들게 되어있다. 더 이상 병의 뿌리가 깊어지기 전에 치료에 나서야 한다. 

병들어 있는 학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특히 학생을 둔 부모라면 이 말을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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