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현대 미술관이 인접한 한 도로 횡단보도 앞에서였다.
양손에 쇼핑백을 든 60대로 보이는 일본 남성이 신호를 기다리다 도로에 떨어진 음료수 캔을 발견하고는 발로 밀어 인도로 옮겼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캔을 버리기 위하여 쓰레기통을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캔을 버릴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쇼핑백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더니 캔을 한 손으로 집어 들어 자신의 쇼핑백 속에 넣었다. 집에 가는 길에 쓰레기 통이 있으면 버리려는 심사 같았다.
그 장면을 지켜본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남성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90년대 초, 처음 도쿄를 방문했던 때가 생각났다. 거대한 도시는 어디를 가나 거리에 휴지 한 장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니 먼지 하나 없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골목길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대도시가 어떻게 이렇게 청결할 수 있을까 놀랍기만 했다.
공기는 또 어찌나 청정하던지 정장 안에 입은 하얀 와이셔츠는 며칠이 지나도 칼라나 소맷동에 때가 묻지 않았고 새 옷을 꺼내 입은 것 같았다. 검정 구두는 닦지 않고 일주일을 신어도 반질반질 윤이 났다. 당시 서울은 매연과 먼지가 심각해 흰 와이셔츠는 하루만 입어도 때가 끼어 매일 갈아입어야 했었고, 구두는 아침 출근할 때마다 구둣솔이나 천으로 먼지를 닦아내야 했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라 접근이 용이해서 자주 찾았는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도쿄는 ‘깨끗함’의 상징 같은 도시였다. 길거리에는 쓰레기통이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쓰레기가 보이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버리지 않기 때문에 청결은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도쿄는 달라졌다. 전체적으로 여전히 깨끗한 인상을 주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길거리나 화단 주변에는 버려진 휴지나 담배꽁초, 종이컵이나 캔을 발견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심지어는 쓰레기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나뒹구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물론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전적으로 일본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거리에는 어디를 가나 밀물처럼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흘러넘치고 있으니까. 그래도 일본인들이 버린 쓰레기도 분명 있을 것이다.
도쿄도 현대 미술관 근처의 횡단보도에서 만난 그 남성은 아마도 이런 변화를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길바닥에 버려진 캔을 굳이 집어 들어 자신의 쇼핑백 속에 넣는 선택. 그것은 자신이 익숙했던 청결한 세상을 지키려는 몸짓이었을 것이다.
변화는 거리나 화단의 쓰레기에 머물지 않는다. 예전에는 음식점이나 카페는 심연처럼 조용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언성을 낮추었고, 웃음도 소리 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정숙함은 그들의 몸에 밴 타인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요즘의 카페나 음식점에서는 웃음소리가 확성기를 통해서 나오는 것처럼 높고, 시끌시끌한 대화가 공간을 가득 채운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활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특히 조용함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쿄도 현대 미술관 근처에서 목격했던 60대 남성은 한때 당연했던 거리의 청결, 말없이 지켜졌던 공공장소에서의 남에 대한 배려가 지금은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도쿄의 얼굴이 낯설게 느끼며 지난날을 그리워할 것이다. 비단 그 남성뿐만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까지 도시의 주역이었던 많은 세대가 같은 심정일 것이다.
도시는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같지 않다. 누군가는 예전에 갇혀있고, 누군가는 오직 현재만을 바라본다.
과연 변화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