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그리고 젊은 시절의 추억

by 김정준








나는 어려서 운동신경이 둔하기로는 선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체육 시간이 싫어 당번을 꼬셔 운동장에 나가는 대신 교실에 남아 빈둥거리곤 했다. 체력장 점수는 달리기, 멀리뛰기, 던지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오래 달리기, 팔 굽혀 펴기까지 모든 종목이 공평하게 최저 수준이었다. 여럿이 모이면 으레 편을 갈라 즐기는 축구나 농구에도 나는 한 번도 끼어 본 적이 없다.


키는 장대처럼 커서 늘 교실 뒷자리를 지켜야 했고, 비만과는 거리가 먼 마른 체형이었는데도 왜 그렇게 운동을 싫어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젊은 시절을 배드민턴에 푹 빠져 보냈다.


배드민턴은 고강도의 전신운동이다. 민첩성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결코 만만한 운동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운동에 맛을 들인 이유는 분명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았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 주었으며, 온몸에 엔도르핀이 퍼지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교직 생활을 하던 시절, 하루의 일과가 끝난 뒤 학교 실내체육관은 배드민턴을 치는 선생님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셔틀콕이 공중을 가르며 오갈 때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숨은 가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랠리가 길어지면 잘 쳤다는 이유로 웃었고, 엉뚱한 실수로 셔틀콕을 놓쳐도 서로를 보며 또 웃었다.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나도 그 순간만큼은 아픈 줄 몰랐다.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기면 이겨서 웃었고, 져도 재미있어서 웃었다. 그 시간 자체가 힘든 하루에 대한 충분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오래전에 배드민턴 라켓을 손에서 놓았지만, 노후가 된 지금도 배드민턴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TV에서 배드민턴 경기가 중계되면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자연스럽게 화면 앞으로 다가가게 된다. 코트 위를 누비는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고 빠른 발놀림과 날카로운 스매시 하나하나에 박수를 보내며 열렬히 응원한다.


나는 대중이 열광하는 축구나 야구 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기장을 찾은 적도 없고, TV 중계를 챙겨 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배드민턴 경기는 빠뜨리지 않고 보고, 테니스와 탁구도 유심히 지켜본다. 아마도 경기의 흐름과 리듬이 배드민턴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문득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땀 흘리고 웃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동료들의 웃음소리도 여전히 귓가에 선명하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