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훔쳐보았으면 하는 일기
어젯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벚꽃나무에 꽃들이 다 떨어져 나가 앙상한 가지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 아침은 쾌청하기 그지없는 하늘이 나를 반긴다.
목적지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다.
자주 가던 산책길대신 갑자기 발길이 토끼공원으로 향했다.
원래 이 공원의 이름은 따로 있지만 , 어느 날 우연히 두 마리의 토끼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하얗고 조그마한 토끼의 루비같이 붉은 눈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가갈수록 멀어지던 토끼를 졸졸 귀찮게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촉촉하게 샤워를 마친 새순들과 작디작은 이름 모를 꽃들이 뽀얀 얼굴을 앞다퉈 내미니 손가락으로 툭, 괜스레 건드려본다.
비 온 뒤 나는 흙냄새와 풀냄새가 뒤엉켜 묘한 안정감을 준다.
친구와 통화를 하다 눈물이 났다. 어젯밤 잠들기 전,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기도했던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6개월이 흘렀는데도 변하지 않은 나 자신을 자책하는 나날들이 그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침부터 적절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찜찜한 심정을 털어놓다 보니 감정이 폭발했다. 급히 전화를 끊고 이어폰의 볼륨을 높여본다.
하늘은 이렇게 맑은데 눈물은 멈추지 않아서 그냥 실컷 울기로 했다. 지나치게 깔끔히 손질된 무궁화나무를 보니, 비뚤어지고 상처투성이인 모습이 나와 닮아있는 듯하여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나도 있잖아. 힘내.'라며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보였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코를 박고 연신 무언가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던 보더콜리는 종종 뒤에 서 있는 주인을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주인에게 '나 잘했어?'라고 묻는 듯 보였다. 주인은 그런 보더콜리를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순간 저 보더콜리가 나에게 뛰어와 안겼으면 하고 생각했다.
'나, 위로가 필요한가?'
보더콜리에게 시선이 빼앗긴 덕분에 눈물은 멈춰고 어느 정도 감정이 정리가 되어 집으로 향했다.
기분의 전환을 위해 좋아하는 젤리도 사고, 자주 가는 화장품 매장에 들러 하릴없이 배회도 해봤지만 딱히 달라지는 게 없었다.
집에 와서는 지금 꼭 해야 할 일도 아닌데 화장대를 정리하고 그토록 귀찮아하던 냉장고 청소도 했다.
바닥도 닦고 재활용 쓰레기도 분리해서 밖으로 내다 버렸으며 저녁에 먹을 음식 몇 가지를 미리 만들어 두었다.
몸을 쓰지 않고서는 어쩔 재간이 없었기에.
나를 감고 있는 이 어두운 기운을 떨쳐 보려 애를 썼지만 눈을 감고 모른 척하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위로가 필요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분명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루가 꼬박 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평화로운 일상이 주는 이 토록 치명적인 불안정함에 오늘도 쉽사리 잠에 들기 어려울 것 같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산책이 필요할 것 같으니 눈을 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