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는 상상을 먹고 자란다.
어제 아침에도 들었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휴대폰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한 뒤 알람 설정에 들어간다.
알람 소리가 하루하루 짜증 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다른 알람으로 바꿔야 할 시기가 됐나 보다.
좁고 조용한 내 방에서 나가, 더 좁고 조용한 엄마의 방에 들어가 본다.
“끼익…”
항상 나보다 일찍 일을 나간다는 걸 알지만 괜히 한 번씩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준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7시 삽겹 천하’
‘ㅇㅋ’라고 답장을 보낸 뒤 옷을 갈아입고 나도 나갈 준비를 마쳤다.
신발을 신으며 식탁을 쳐다보니 오늘 저녁 저기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을 엄마가 눈앞에 그려졌다.
나는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듯 눈길을 돌려 황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까지의 거리는 애매했다.
버스를 타고 가기에도, 걸어가기에도 애매한 그 거리…
내 마음속에 기준을 세워야 했다.
‘늦거나 아프면 버스를 타고, 아니면 좀 일찍 나와 걸어가자’
그 이후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버스를 타고 가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32분”
오늘은 평상시보다 2분 정도 빨리 걸어온 모양이다.
“띠링”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장님이 가게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일찍 왔네?, 딱 맞춰서 와도 뭐라고 안 한다니까”
저 말은 사실일 확률이 높다. 33살의 여자 사장님.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착하다.
조금 더 표현해 보자면… 예쁜데 착하고 돈도 많은 것 같다.
“제가 걸음이 빨라서요..”
“나 오늘 점심에 약속이 있어서 오픈 준비하고 나가봐야 할 거 같거든, 혼자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직장인들이 몰려오는 점심시간만 잘 버틴다면 충분히 혼자도 할 만하다.
그 시간이 조금 힘들겠지만 아직 사장님과는 어색한 사이라 어쩌면 혼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두두둑”
사장님이 머신에 원두를 채우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행주를 빨아와 여기저기 닦기 시작했다.
“역시 눈치가 빨라.. 시키지 않아도 척척 한다니까?”
“사장님이 원두 채우고 계시니까..”
타인에게 나는 눈치가 빠른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자주 들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군대에 갔을 때도,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근데 사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다.
첫 여자친구였던 현정이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너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네 눈치를 보게 돼”
맞는 말이다.
나는 눈치가 빠른 게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보다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나쁘지는 않았던 사람?
그 편으로 기억되는 것이 좋다.
테이블을 닦고, 시럽통을 확인하고, 부족한 재료들을 채워 넣으니 드디어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카운터에 사장님과 나 둘만 남은 어색한 상황.
그 순간이 오면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에 달린 CCTV를 잠시 쳐다본다
누군가 TV에 나오는 예능처럼 CCTV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 “아무 말이라도 좀 해!”라고 답답해할 상상을 한다.
“주영이가 몇 살이라고 했지?”
항상 그렇듯 이 어색함을 깨 주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주위 사람이다.
“스물일곱이요”
문득 그런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몇 시에 나오셨어요?”
“나? 음… 한 여덟 시 반? 그쯤 온 것 같은데, 왜?”
‘왜?’라니 그냥 해본 질문인데, 되물음이 올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몇 시에 나오셨는지 궁금해서… 오픈 준비 많이 해 두신 것 같아서요..”
“아니야 와서 조금 앉아 있다가, 너 오기 얼마 전부터 시작한 거야”
“아…”
“너 아직 내가 어색하니?”
나의 노력이 너무 티가 난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원래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아냐, 네가 너무 불편해하는 거 같아서 물어본 거야. 점점 친해지겠지 뭐, 그렇지?, 내가 싫은 건 아니지?”
“네 그래도 점점 편해지고 있어요.”
“띠리링”
어색한 공기 속, 다행히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든 어색함이 잠깐 동안 열린 문 틈 사이로 빨려 나가는 것 같아, 상쾌함 마저 드는 기분이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혹시 나의 눈빛이 보챔으로 느껴질 수 있어 나는 의도적으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닐라 라테 아이스 주문이 들어왔고, 나는 바로 커피 머신 쪽으로 뒤 돌았다.
“드르르륵.. 드르륵”
나는 카페 그라인더에서 원두를 갈아 내리고 있었고 옆을 보니 사장님은 일회용 컵에 얼음을 담고 있었다.
추출된 에스프레소에 바닐라 시럽을 넣으며 이 손님이 나가기 전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문하실 바닐라 라테 아이스 드릴게요”
커피를 받은 남자가 나갔고, 그 후로 어색한 시간을 깨 주는 몇몇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어? 나 이제 나가 봐야겠다.”
사장님이 말했던 점심 약속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네, 고생하셨어요”
“이제 곧 점심시간이라 손님들 몰려올 텐데 미안하네..”
“괜찮아요 얼른 가보세요”
사장님은 앞치마를 벗고 웃으며 말했다.
“얼른 가보라고?, 너 나 가니까 엄청 좋아하는 거 같다?”
“에이…무슨”
사장님은 가방과 핸드폰을 챙겨 문을 열고 나가려다, 나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너 마시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마음대로 타 먹어! 알지?”
“네”
“맨날 대답은 해 놓고 잘 안 먹더라, 눈치 보지 말고 만들어 먹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장님은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시간을 보니 곧 근처 직장인들이 몰려 올 시간대였다.
나는 일회용 컵들을 10잔 정도 꺼내, 얼음을 담아두며 곧 몰려올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2:35분쯤이 되자, 직장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피곤해 보이는 사람, 직장 내 상사 뒷담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사람, 맞장구 쳐주는 사람, 조금은 어색한 동료 사이인 것 같은 사람 등등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정신이 없었다.
주문 알림이 계속 들어왔고, 저 많은 손님들을 막힘 없이 받아주는 키오스크가 대견했다.
“15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4잔 나왔습니다”
“16번 손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청포도 에이드 나왔습니다”
미리 컵에 얼음을 담아두길 잘했다. 준비했던 얼음컵이 생각보다 금방 떨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내가 당황할 시간을 늦춰주었다.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며, 다시 직장인들을 슬쩍 바라봤다.
‘내가 저 사이에 있으면 어떤 사람일까?’
사원증을 목에 맨 직장인들이 부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저 사이에 있으면 어떻게 어울리고 있을지가 더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 뒷담을 하진 않으니까 듣고 있을 테고, 맞장구까지 쳐주는 성격은 아니고, 그냥 피곤해 보이면서 어색한 사람처럼 보이려나?
‘아니면..’
저 들 사이에 껴 있지 못하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있으려나.. 아니지 일단 취업은 되려나… 어제저녁 해치워버린 자소서가 생각났고, 지독한 현실을 생각하면 언제나 머리가 조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