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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미 Nov 30. 2023

런던 살인 사건 1 (레인즈버로우 호텔)

따뜻한 햇볕이 영욱의 창문으로 들어왔다. 10월의 영국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날씨였다. 영욱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커튼 틈을 통해 창밖을 바라보았다. 옆집에 사는 인도인 부부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이른 휴가를 떠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모래 놀이 장난감을 양동이에 담아 신이 난 모습이었다.



“날씨가 유난히 좋은 날이군. 좋을 때다.”



영욱은 차에 탄 아이들의 신이 난 모습을 보며 아저씨처럼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런던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친구 민효였다.



‘이 녀석이 웬일이지?”



민효는 영욱의 몇 안 되는 한국인 친구였다. 작년 캠브리지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영욱은 사실 영욱이라는 이름보다 영국인 부모가 지어준 Luke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했다. 영욱은 심리학을 전공하는 민효를 동아리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민효는 영욱을 ‘영욱’이라고 불러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보내고 온 민효는 영어가 서툰 대신 한국어가 능통했다. 반대로 영욱은 한국어가 서툴렀다. 영욱은 언어 교환을 하자는 민효의 갑작스러운 제안 이후에 친구가 되었다.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영욱은 한국어 학습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 민효와 농담까지 주고받는 수준이 되었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민효의 영어 실력도 영욱의 한국어 실력만큼이나 많이 향상되었다. 민효는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하여 학비에 보태고 있었다. 요즘 여자친구가 생긴 이후에는 영욱을 본의 아니게 멀리하여 영욱이 살짝 삐져 있던 차였다.



“Good evening, 영욱? 잘 지내고 있지?”



“잘 지내고 있지. 햇빛이 너무 좋은 가을 오후에 누구처럼 함께 나들이 나갈 여자친구가 없는 거 빼고는.”



“뭐야. 갑자기 왜 그래. 평소에 혼자 잘 다니면서…….”



“안 그래도 그러려고.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내가 뭐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 사람이었나? 친구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한 거지.”



“음. 난 잘 지내고 있으니 그럼 된 거네. 바~~~이.”



영욱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장난이기도 했지만, 여자친구가 생기고는 자기 필요할 때만 찾는 민효가 얄밉기도 했다.



“아. 또 왜 그래! 영욱. 친구끼리.”



“여자친구 숙제 나한테 떠맡기고 둘이 스코틀랜드로 여행 간 게 일주일 전인 거 같은데? 한국 사람 친구는 다 이런 거야?”



“아니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안 그래도 수아가 고맙다고 맛있는 거 사준대. 그리고 수아 친구 중에 되게 예쁜 애가 있어. 한국 유학생인데 영미라고. 안 그래도 같이 더블데이트 하려고 그랬어. 진짜야.”



예쁜 애라는 말에 영욱의 귀가 솔깃해졌다. 돌 때 영국으로 입양되어 온 영욱은 늘 영국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지만, 이상하게 영국 여자애들에게는 설레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영욱에게 사귀자고 고백한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단 한 번의 데이트 이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영욱은 시간을 뺏기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여 영국인들도 입학하기 어렵다는 캠브리지 의대에 입학했다. 캠브리지에서 가끔 만나는 한국인 여자 친구들이나 여행객들에게 시선을 뺏긴 적이 한두 번이 아녔다.



“음……. 그래? 음……. 그렇다면……. 한 번은 봐주지. 그 숙제는 나한테는 좀 쉽긴 했어. 어제 마지막 과제를 끝내고 다음 학기까지 당분간 한가하니까 시간 한번 잡아보자고.”



“아……. 잘 됐다. 마지막 과제가 끝났다니……. 내가 사실은 부탁할 것이 하나 있는데…….”



틈을 보이는 순간 또다시 낚이는 영욱이었다.



“그래. 이번엔 뭔데?”



“너한테는 아주 간단해. 통역이니까. 대사관 경찰 영사관이 레인즈버로우 호텔에 가서 조사할 일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이 수아와 백일 되는 날이라 우리 템즈 강에서 단둘이 배 타기로 했거든. 환불도 안 되는 거고 통역이야 우리 영욱이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니까……. 또 네가 잘 아는 동네잖아. 겸사겸사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공짜는 아니고 아르바이트비는 제공되는 거니까. 어때 괜찮지?”



“그래. 뭐 통역이야 뭐 쉬우니까. 근데 대사관 경찰 영사 정도면 영어는 곧잘 하지 않아?”



“아니. 대사관 안에서는 영어 못해도 모든 업무가 가능한 거 알지. 한국 경찰과 연락하고 하는 일이야 워낙 능숙하지만……. 또 조사하는데 잘못 이해하면 일이 틀어져 버리니까……. 하여튼 잘 좀 부탁해.”



‘레인즈버로우 호텔? 거긴 엄청 고급 호텔이잖아. 디카프리오나 마돈나가 묵어서 유명한……. 거기서 대사관 경찰 영사가 할 조사가 도대체 뭐지?’



영욱은 얼른 씻고 자전거를 타고 레인즈버로우를 향해 떠났다.






>> 레인즈버로우 호텔



영욱은 자전거를 스탠드에 고정하고 호텔 로비로 올라갔다.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으며 로비로 들어서는데 중년의 남성이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 영욱군?”



“네. 반갑습니다. 영욱 홈즈입니다. 김성현 영사님 되시나요?”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했다.



“나 혼자 와도 되지만 예민한 문제가 될 수 있어서 문제 될 일이 있을까 해서 부탁했어. 캠브리지 의대를 다닌다고? 무척 똑똑한가 봐.”



“네. 들어간다고 고생했는데 이렇게 대접받으니 잘했다 싶네요.”



“민효와 한국어 공부한 지 일 년도 안 된 거로 아는데 이렇게 농담까지 하는군. 나는 영어를 10년이 넘게 배웠는데 아직 농담을 이해도 못 하는데……. 하여간 잘 부탁하네.”



둘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게 말이야. 혹시 키아라 라고 아나?”



“네. 알죠. 요즘 인기 있는 걸그룹 아닙니까? 5명이고……. 한창 인기 있었는데…….”



영욱은 민효가 뮤직비디오를 보여줘서 알고 있었다. 5명 모두 다른 매력을 뽐내는 예쁜 여자애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아라는 왜…….”



“키아라 멤버 민희가 이 호텔에 묵었는데 사망한 상태로 발견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어.”



영욱은 뮤직비디오 속에서 청순한 매력을 뽐내던 긴 머리의 소녀 민희를 떠올렸다. 그 아이가 왜 여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걸까. 영욱의 날렵한 몸에는 솜털들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5층에 다다르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김 영사와 영욱은 경찰통제선이 쳐져 있는 호텔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문밖에서 지키던 경찰들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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