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은 오늘 오전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배가 고팠다. 펍(pub)에 들어가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여기가 펍이란 곳이군.”
김영사가 기분이 좋은 듯 하다.
“영국에 5년 살면서 아직 안 와보셨어요? 널린 게 펍인데….”
“음. 영국 음식을 먹으면 영 소화도 안되고 먹은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외식을 하면 한국 식당만 간다네.”
“불편해서 어떻게 사세요. 어서 한국에 어서 가셔야 겠어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순전히 가족 때문에 와 있는 거야.”
영욱과 김성현 영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경태는 아무 말이 없이 민희의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뭐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나왔나요?”
“뭐가 잘못된 것 같아요. 아주 많이요.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영욱은 경태의 말에 격하게 공감을 하는 것 같았다.
“맞네요. 저도 왜 민희 사망 사건에 제가 있는 건지 연관이 된 건지 도대체 모르겠네요. 전 형사도 아닌데.”
김 영사도 말했다.
“그러게……. 나도 영국 경찰이 하면 되는 수사를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조경태… 너는 왜 갑자기 나타나서 대충 살고 있던 내 인생에 끼어드는 거냐?”
경태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사실……. 민희는 저와 사귀는 사이였어요. 내년엔 결혼하자고 했구요. 제가 민희만을 위한 기획사를 차리기로 했어요.”
“뭐야? 돈이 어디 있어서?”
“직원은 저 혼자 있으면 되고 집에서 근무하면 되니까……. 전 민희만을 위해서 살 수 있었어요. 민희도 저를 사랑했어요. 그런데 지금 핸드폰에 보니 그런 남자가 저 만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민우 이사도 마찬가지였을 거구요. 그 남자들도 다 저처럼 민희를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영욱은 조경태가 가여웠다. 영욱도 불타는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가 아니 던가! 비록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핸드폰에 그런 남자들의 흔적이 더 있나? 겉보기와 다르게 사랑을 전략적으로 이용했군.”
김 영사의 말에 조경태가 말했다.
“오민우를 이용해서 큰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옮겨서 더 큰 것을 노려보려 한다는 소문이 있었었거든요. 바람둥이 오민우를 그렇게 만들다니 민희는 더 큰 인물이었던 거죠.”
조경태는 사랑과 질투에 몸을 떨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이 자신을 만든 민희를 존경하는 마음까지 드는 듯 했다.
‘역시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어리석은 걸까?’
영욱은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사실 관계는 확인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 동안 핸드폰은 열어본 적이 없으신 거죠?”
“네. 워낙 민희가 노발대발해서 한번도 들여다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민희가 자기 관리가 철저했습니다. 약속은 지키는 스타일이죠. 오민우 사장과 가끔 만나는 건 알고 있었지만요. 오회장 말대로 민희는 오사장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영국에 간다고 했을 때도 허락을 했던 겁니다. ”
“그럼 누가 민희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영욱이 물었다.
“글쎄요……. 사실 민희는 옛날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 들은 바는 없지만 라이벌 관계에 있는 연예인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게 누구죠?”
“그게…….”
“둘이 사귄 것까지 말하고 못 해줄 말이 뭐가 있나? 수사를 하는데 단서가 없는데 어떻게 수사를 하나?”
감자 튀김을 우걱우걱 입에 집어넣으며 김성현 영사가 말하였다.
“사실……. 민희와 유라가 라이벌 관계였죠. 엄밀하게 말하면 유라가 민희를 많이 괴롭혔죠. 민희는 유라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구요. 오히려 잘 지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가까이서 지켜봐서 잘 알아요. 여자애들 서로 질투하고 그런 거 아시잖아요.”
“알지……. 우리 마누라는 우리 딸과 서로 질투하고 싸운다네…….”
김성현 영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같은 키아라 멤버 유라요?”
영욱이 놀라며 말했다.
“네. 사실 둘이 사이가 무척 안 좋아요. 민희가 먼저 뜨면서 유라가 질투를 많이 했죠. 아시다시피 유라가 집안이 무척 좋잖아요. 엔테테인먼트 회사에 돈을 투자를 하면서 유라의 엄마가 회사에 찾아와서 특혜를 달라고 행패를 부린 적도 있구요. 그만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아이이니 눈에 가시 같은 민희를 없애고 싶어서 무슨 짓이든 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영욱은 생각했다. 유라라면 '돈이 없는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려서 뭇매를 맞은 적 있는 아이가 아닌가. 하지만 늘 인기는 민희가 더 많았다. 돈으로 인기는 살 수가 없었나보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면 무슨 일이든 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지금 유라가 어디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회사에 전화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조경태는 심각한 표정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그게… 유라는 지금 집안 사정으로 독일에 있어요. 무슨 일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구요. 당분간 활동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알려왔지요. 그래서 키아라 전체 활동은 당분간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민희가 혼자서 영화와 CF 활동을 하고 있었지요.”
“경태 자네가 그런 애와 함께 일을 했다니 참 고생이 많네. 생긴 것도 이십대 같지 않고 애를 둘 낳은 사십대 아줌마 같이 생겼던데 성격도 별로고 그 엄마까지 참 순실스럽구만. 잠깐만 이야기로 들었는데도 호박고구마를 한 박스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 자네가 보살일세.”
김 영사는 진심으로 조경태를 위로했다.
“네……. 사실 민희가 유라를 만나러 영국에 온다고 했어요. 유라와 담판을 짓겠다고요. 민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아이에요. 민희의 배우 활동을 방해하겠다며 유라가 자꾸 협박을 했거든요. 확실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요.”
“아니 왜 그걸 이제 이야기하나? 그리고 그 확실한 게 도대체 뭔가? 민희에게 자네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던 건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유라를 만나야 되지 않겠나? 단서가 다 사라지기 전에 말이야.”
김성현 영사는 음식을 조금 먹으니 두뇌가 잘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러게요. 저도 아까 민우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고 저도 흥분을 해서 말씀 드려야 하는게 늦어버렸네요. 저에게는 오빠 동생 사이 이상이 아니라고 했거든요. 민희가.”
"매니저님 배신감을 아는데요. 지금은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재빠르게 움직여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찾아내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민희씨 핸드폰에서 단서를 더 찾아보죠. 매니저님 핸드폰 통화내역을 다시 한번 살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