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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미 Feb 12. 2024

다 큰 딸의 수발을 평생 들어야 하는 내 상황


나는 프로수발러이다.



나도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한 때는 내 엄마의 수발을 받는 귀한 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너는 공부나 하라'며 손에 물 한 방울 못 묻히게 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밖에 모르던 그런 시절도 생각해 보니 있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나서 인 것 같다.



'시댁'이라는 곳에서 며느리는 아무리 똑똑해도 커피를 타고 사과를 깎는 존재였다. (나는 고대 나온 여자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였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태어났으며 자신의 욕구를 채워달라는 요구로 밤이고 낮이고 울어재꼈다.


더구나 나의 큰 아이는 '자폐'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18살이지만 밥을 먹거나 씻고 옷을 입는 등 기본적인 신변처리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말 한마디 못하는 딸은 배가 고프면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밤에 잠을 못 자고 찡찡댄다. 아이가 무엇을 먹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살펴서 아이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 주려 노력했다. 그 결과 자폐 아이들이 가지기 힘들다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를 만들어냈고 아이의 문제 행동은 많이 개선되었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이렇게 보내다 보니 나는 동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직장에서도 새로 인사 이동한 사람들 챙기는 일에 특히 재능을 발휘하니 말이다.



나의 이런 '서비스'를 고마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오히려 당연히 여기고 뭐든지 나한테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일을 할 시간조차도 할애해 가며 그 사람의 편의를 봐줬으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인정과 감사가 아니라 또 다른 부탁과 도움 요청이었다.



나는 수발을 잘 든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수발을 들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프로 호구가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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