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2일간의 피렌체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나폴리에서 늦게 출발하는 기차를 선택했다. 대신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떠나는 다음 기차는 오후 4시 39분으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숙박은 이틀이지만, 실제 여행 시간은 넉넉하지 않기에 가능한 한 여유로운 출발을 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름의 끝자락임에도 피렌체의 한낮은 여전히 무덥고, 실외를 걷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햇볕은 강했다. 오전 11시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자마자 짐을 들고 돌아다니기엔 무리였는데, 다행히 호텔에서 무료로 짐을 맡아줘 부담 없이 가벼운 산책을 나설 수 있었다.
둘째 날은 특별한 계획 없이 구글지도를 보며 근처를 살폈다. 유명 관광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큰 공원과 마을이 있어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5~6 정거장을 지나자 넓은 공원 주차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은 한국에서 흔히 보던 들판과 잔디가 어우러진 공원이었고, 그 옆으로는 맑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 비로소 현지인의 생활이 묻어나는 조용한 동네가 나타났다.
입구 근처에 작은 상설 시장이 있어, 무슨 물건들을 파는지 구경해 보기로 했다. 작물과 꽃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꽃 이름은 몰랐지만 크고 예쁜 꽃송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용으로 산다고 말하고 예쁘게 포장을 부탁하자, 바쁜 시간임에도 주인은 정성스럽게 포장해 주었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가격은 5유로라고 했지만, 포장이 너무 예쁘고 마음이 따뜻해져 10유로 지폐를 건네며 잔돈은 괜찮다고 말하자 처음엔 극구 사양했지만, "너무 잘 포장해 주셔서 고맙다"라고 하니 결국 받아주었다. 관광지에서 종종 느낀 삭막함과는 다른, 정 많은 시장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한 손엔 꽃을 들고, 함께한 딸과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바라보니 노란 꽃송이 덕에 사진이 한층 더 빛나 보였다.
마을 입구에 작은 교회도 있어 들어가 보았다. 대형 성당처럼 웅장하거나 예술 작품으로 장식된 곳은 아니었지만, 단출한 십자가와 예수상, 나무 의자들이 차분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잠시, 이탈리아가 아닌 한국의 시골 교회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동네 사람들이 많이 들른다는 작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동양인인 내가 혼자 주문을 하는 것이 조금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종업원도 차분히 주문을 받아주었고, 가격도 정확히 표시된 그대로였다. 관광지에선 가격표가 없거나, 있어도 더 청구하는 일이 많아 포기하고 지불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기분이 좋았다.
커피는 고작 2유로도 되지 않았지만, 향과 맛이 풍부한 카푸치노였다. 짧은 산책과 따뜻한 커피 한 잔, 그 소박한 여유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챙기고 피렌체 역으로 향했다. 여름철 관광지답게 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출발 두 시간 전부터 대기하며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피로가 몰려왔고, 두 시간 반 넘게 달리는 열차에 올라 베네치아로 향했다.
베네치아에서는 다행히 역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구해두었고, 평일이라 저렴한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머물렀던 호텔들과 달리 이곳은 현대적인 10층짜리 호텔 건물로, 도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났다. 리셉션에서 트윈룸 키를 받아 짐을 풀고,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 뒤 3일 머물 준비를 했다.
근처 슈퍼에서 물과 음료, 간식 등을 사 와 냉장고에 넣으려 했지만, 방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다시 리셉션에 가 물으니, 내가 예약한 저렴한 타입의 방엔 냉장고가 옵션에서 빠져 있다고 했다. 냉장고가 필요하면 더 비싼 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냥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저렴하다지만 기본적으로 냉장고는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은 내가 예약 조건을 꼼꼼히 살피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이전에 머물렀던 오래된 호텔들과는 달리, 깨끗하고 현대적인 건물에서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고대 로마의 흔적을 여행하듯 시간을 거슬러 온 여정 속에서, 이번엔 다시 현대의 공간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불평 없이 이곳에서의 3일을 무사히, 조용히 보내보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