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되기
금요일, 룸메이트 요한이 점심을 자기가 준비해 준다며 나를 초대했다. 콜롬비아 스타일 토르티야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좋다!”라고 대답했다.
이곳 몰타에서는 학교나 기숙사에서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한 끼를 만들어 준다고 하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요한이 일본인 친구 히로토 안도를 점심에 초대했다고 말해주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나는 흔쾌히 “좋지!”라고 대답했다.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새로운 인연의 시작일 수 있으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곳에 온 이유는 영어 공부지만, 책상에 앉아 교과서만 파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며 언어를 몸으로 익히는 것이 더 큰 배움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누구나 쉽게 초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어의 장벽도 있고, 문화적인 거리도 있어서 먼저 다가가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요한처럼 성격 좋고 사교적인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이다.
히로토는 요한과 같은 반 친구로, 일본 요코하마에서 온 학생이었다. 몰타에서 한 달간 언어연수를 마치고 내일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짧지만 농도 짙은 한 달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둘 생겨났다.
히로토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몰타에 왔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요한에게 물어보니 히로토는 쉬는 시간에도 교실을 잘 나가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라고 했다.
그런 히로토가 식사 자리에서는 뜻밖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과 일본이 이웃 나라인 만큼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대화 중간중간 “고마워~” 같은 한국어 단어를 장난스럽게 꺼내 웃음을 주었다.
나도 질세라 고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 단어를 꺼내 들며 주거니 받거니,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땐 그렇게 웃어본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순수한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정말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이들 청춘들의 순수함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유쾌한 센스 덕분에 나도 마음이 맑아지고 젊어진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래전 내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
이렇게 유럽에서 시간을 보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과연 예전처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걱정도 스쳤지만, 지금 이 시간은 그저 즐겁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내일이면 떠나는 히로토에게 아쉬움을 담아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앞으로 5년, 10년 후엔 분명 멋진 청년이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젊음은 돈도 명예도 필요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보석 같다. 오늘 그들과 함께 웃으며, ‘젊음’이라는 보석의 가치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