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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사 첫날밤, 고양이와 불빛 그리고 타자 소리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1월 28일, 처음 몰타에 도착한 후 나는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해 왔다. 그러던 중 3월 22일부터 새로 임대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대학 기숙사 계약은 3월 31일 일요일까지였지만, 몰타에서는 방을 계약하면 바로 입주해야 한다는 집주인의 말과, 거주 비자 신청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때문에 서둘러 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는 대학과 가까워 통학이 편리했고, 다양한 국제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한 달에 750유로, 한화로 약 120만 원이 넘는 기숙사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학교와 멀지 않은 "San Gwann"이라는 동네에서 방을 구했고, 다른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학교와 가까운 위치만 보고 결정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비자 신청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도 크게 작용했다.


한국이었다면 햇볕이 잘 들고, 남향에다 앞에 막힌 건물이 없는 집을 택했겠지만, 이번엔 그런 여유 없이 급하게 계약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몰타 사람들도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의 전망 좋은 집을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임차한 집은 집주인과 같은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 구조였다. 한국에서도 임차인과 집주인이 같은 공간에 사는 경우는 흔치 않고 불편한 일이 많아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집주인은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이었다.

처음엔 ‘왜 혼자 사는 걸까’ 궁금했지만 실례가 될까 봐 묻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녀가 “남편과 따로 산다”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내 직업을 듣고 안심하는 듯했고, 나는 그녀의 직업이 ‘심리학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도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 어색한 조합이었지만 비자 때문에 급하게 방을 구한 상황이라, 이 집에 살기로 최종 결정했다. 집주인에게는 4월 1일부터 정식으로 입주하겠다고 말했고, 그전에는 주말에만 적응 차원에서 집을 사용하겠다고 알렸다.


그리하여 3월 22일 금요일, 처음으로 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방은 적당한 크기였지만, 처음 생활하는 곳이라 그런지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기숙사에 있던 짐의 반 정도를 챙겨 나왔는데, 정리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새로 얻은 집

입주하자마자 집주인이 내 방에 들어와 이불, 옷장, 화장실, 부엌 등 집안의 기본적인 구조와 사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침대에는 커버부터 이불까지 직접 하나하나 깔아주는 모습에서 약간의 배려와 낯섦이 함께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바닥 생활에 익숙해서 이불을 내가 알아서 깔고 덮는 일이 당연했지만, 누군가가 침대보를 직접 세팅해 주는 경험은 오래 오래간만이라, 괜스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자레인지와 오븐 사용법은 익숙해서 대충 듣고 말았지만, 외부 테라스에 놓여 있는 세탁기의 조작은 낯설었다. 유럽식 모델이라 그런지 용어가 조금 달랐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라며 넘기려 했지만, 집주인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을 눈치채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주려 했다.


설명이 끝난 뒤, 집에서 사용할 샴푸, 비누, 치약 등을 사러 근처 할인마트에 갔다. 영업 마감 시간이 밤 10시라 서둘러야 했다. 어두운 길을 걷다 보니 한 번은 넘어질 뻔했고, 한 번은 차량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다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이런 것이 괜한 고생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필요한 물품을 사서 정리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유튜브를 틀어놓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방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는지 거실 불빛이 밤새 내 방으로 스며들었고, 새벽녘에는 고양이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 입주 전에 집주인이 고양이를 키운다고 들었기에 '그 고양이겠구나' 하고 넘기려 했지만, 이어서 들리는 타자 소리는 내 잠을 더 방해했다.

나는 원래 잠이 얕은 편이라 빛과 소음에 민감하지만, 모처럼의 첫날이라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집주인이 “하이”라며 인사를 건넸고, 나는 자다 일어난 상태에서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초췌하지는 않았는지, 낯선 동양인이 새벽에 부스스한 얼굴로 등장한 걸 본 집주인은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한참 뒤, 나는 그녀에게 “한국인은 처음 보느냐”라고 물었고, 그녀는 “아시안 중에 인도인을 만난 적은 있다”라고 답했다. 외국인에게 방을 임대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과 인도는 아시아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문화와 생활 방식은 많이 다르다”라고 설명했고,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아침, 그래도 하루를 이 집에서 보내고 나니 조금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집주인도 피곤했는지 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굴까 싶어 열어보니 나이 지긋한 여성이 들어섰고, 그녀는 집주인의 어머니였다.


딸을 찾는 듯해 “방금 잠들었다”라고 말해주었고, 그녀가 전날 밤새 일을 했다고도 덧붙였다.

이 집에서의 첫날은 다소 낯설고 어수선했지만, 다양한 경험들이 빠르게 쌓여갔다.


기숙사에 있었다면 친구들과 B동 6층에서 함께 식사하고 간식을 나누는 소소한 하루였을 텐데, 이제는 낯선 사람과 집을 나누며 살아가는 생활로 전환된 것이다.

그 덕분에 좀 더 현실적인 몰타의 삶 속으로, 서민적인 일상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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