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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환영은 짧았고, 현실은 길었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임차한 방에 대한 첫인상을 룸메이트 요한에게 설명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집 안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집주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한국처럼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누가 집 안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신발을 신고 방 안까지 들어가는 구조라, 문 앞만 보고는 눈치챌 수 없었다.


어제 정리하지 못한 짐과 옷장을 먼저 정돈했다. 옷장을 열어보니 내부에 한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듯 먼지가 수북했다. 그 꼼꼼한 성격의 그녀가 이렇게 그냥 뒀다는 게 조금 의외였고, 동시에 불쾌했다. 새 임차인이 오기 전에 거주에 불편함이 없도록 깨끗하게 치워 놨어야 함에도 옷장 내부는 먼지가 수북하여 걸어 놓아던 옷을 다시 빼고 청소를 해야만 했다. 한참 동안 옷장 내부를 깨끗이 닦아내고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더니, 유튜브에 켜둔 짧은 영상 하나도 다 보지 못하고 피곤하여 잠에 빠졌다.


다행히 오늘 밤은 어젯밤처럼 거실에서 집주인이 밤새 일하지 않아서, 눈치 보지 않고 편히 잘 수 있었다.

나는 평소 새벽 5시쯤 잠에서 깨서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가 6시쯤 밖으로 나오곤 한다. 하지만 새 집에서는 아직 적응이 안 돼 7시가 될 때까지 조용히 참고 있다가 방 밖으로 나왔다. 전날 밤, 화장실이 급했지만 꾹 참았다가 결국 더는 참지 못해 급히 나갔는데, 다행히 화장실은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세탁기를 사용하려고 보니 어제 집주인이 돌려둔 세탁물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수건 몇 장이었는데, 널어 둘 만한 빨랫줄이나 건조대가 없어서 식탁 의자에 널어두고 내 빨래를 세탁기에 넣었다. 테라스에는 원래 있던 건조대가 보이지 않아 일단 그렇게라도 임시로 널어두기로 했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해 먹으려고 어제 사둔 잼과 빵을 꺼내고, 잔잔한 음악을 유튜브로 틀며 찬장에서 그릇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이 잠에서 막 깬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내게 “찬장 문을 너무 세게 닫는다.”라고 말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항의에 당황했다. 그녀는 이어서 세탁기에서 자기 수건을 꺼내어 널어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그녀의 비난은 이사 온 지 겨우 이틀째인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내가 반박하지 않자, 마음 한구석에 불쾌함이 밀려왔다. 찬장 문은 부엌 가구가 낡아서 세게 닫히는 것이고, 나는 주의하려고 했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 소리가 났을 뿐이다. 세탁물 역시 내가 세탁기를 써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꺼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탓했다.


문득, 첫날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집주인과 임차인이 함께 사는 일은 서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조심스럽게 지내려 했지만, 둘째 날 아침 7시에 들이닥친 그녀의 항의는 그런 약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일방적인 태도와 무례함이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나도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가 반박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처음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맞서기 시작했다.


그녀가 심리학자이든 말든, 나는 내 입장을 분명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늘이 내가 이 집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이다. 나는 정당하게 집세를 내고 있는 임차인이다. 이 정도 생활 소음도 못 견디는 건 온당하지 않다.” 하고 말하려 했지만, 내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번역기와 간단한 단어로 최대한 뜻을 전달하려 했지만, 아마도 그녀는 이해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내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여전히 자기 입장에서만 반응했다.


결국 나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부엌장은 너무 오래됐다. 한국의 싱크장은 슬라이드 방식이라 소리가 나지 않는다. 당신이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타인과 함께 사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왜 나를 세입자로 받아들여 놓고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느냐”

의미는 어느 정도 전달된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민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내가 더 논리적으로 설명했을 텐데, 여기서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만 남았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딸기잼과 토스트를 그녀에게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그냥 그대로 두고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버렸다. 사실은 뭔가라도 먹고 나왔어야 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9시에 테니스 강습이 있기도 했고 그녀에게 나의 화난 상태를 보여 주어야 할 것 같아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와 버렸다. 아마도 그녀가 나를 앞으로도 쉽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문을 철컹~ 세게 닫고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다. 묘소에 가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당신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게 시간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고, 최소한의 배려를 기대했을 뿐이다.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없었다. 문자 내용을 보며, 그녀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민감함을 핑계로 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내가 식탁에 음식을 남겨두고 방으로 들어간 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이른 아침부터 큰 사건이 생겨서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3시쯤 그녀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내 세탁물을 널 수 있도록 빨래 건조대를 사두었으니 사용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래서 나도 내 마음을 짧게나마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고 싶다.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았다. 문자로 사소한 감정까지 풀기 시작하면 싸움이 더 커질 것 같아서였다.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이틀, 그것도 채 12시간도 되지 않아 집주인과 말다툼을 했다. 내가 바란 건 단순했다. 같은 공간에서 사는 만큼, 서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오늘의 말다툼이 앞으로의 모든 갈등을 끝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집에서 앞으로 10개월을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이 더 커졌다.


‘그냥 임차인만 있는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나?’

‘집주인과 함께 사는 구조는 역시 무리인가!’


결혼 후, 다시 외국에서 살아보니 예전에 서울 달동네 월세방에 혼자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면 그냥 “보증금을 떼일 각오를 하고 거주비자가 나올 때까지 적당히 버티다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젯밤만 해도 그녀는 “집에 가고 싶지 않느냐”며 나를 걱정해 주듯 말했다. 향수병을 걱정하는 듯한 말에, 그래도 섬세하고 따뜻한 면이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기숙사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고,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기에, 그녀도 더 이상 나를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지금은 그녀도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대화를 해보자고 한다. 나 역시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기로 했다.


3월 말의 주말, 쉬는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다이내믹한 하루였다. 기숙사를 떠나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로 돌아오니, 다시 민생의 현실 속에 뛰어 든 기분이다.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삶이 마냥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외국에서의 삶, 그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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