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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나는 한국인입니다.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이번 주 일요일이면 정든 대학 기숙사를 완전히 떠나야 한다. 하지만 마음은 그다지 새로 옮길 집으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지난주, 새로 구한 집에서 집주인과 말다툼을 한 뒤로 마음이 불편해졌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지내면서 그날의 앙금이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빨래를 해야 했지만, 선뜻 그 집으로 발길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세탁기를 사용하면 10유로, 한국 돈으로 약 1만 5천 원을 내야 하니 결국 어쩔 수 없이 밀린 빨래를 들고 새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부활절 아침. 혹시 집주인이 아직 자고 있을지도 몰라 일부러 느긋하게 오전 10시쯤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집주인의 방문이 반쯤 열린 채였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계약 전부터 그녀의 방은 출입 금지라고 했기에 그저 지나쳤고,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은 뒤, 남는 시간에 장을 보기 위해 걸어서 10여 분 거리의 마트에 갔으나, 부활절이라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돌아오는 길, 전에 들렀던 바 앞에서 유럽 남자 대여섯 명이 앉아 있었고, 그들은 내게 흘끔흘끔 시선을 보냈다. 동양인인 내가 이곳에서 받는 이런 시선은 처음이 아니었기에,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San Gwann의 오래된 교회 앞을 지나던 중, 길가에 갑자기 생긴 노점 빵가게의 주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관심 없다고 지나치려는 찰나, 그가 일행에게 "중국인일 거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 몰타 사람들의 억양은 이탈리아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멀리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이곳에서는 아시아인을 보면 으레 “중국인이냐”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중국인의 숫자도 많고, 중국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결국 발걸음을 되돌렸다. 빵은 언제든 먹을 수 있겠지만, 따뜻한 빵을 아침 식사로 먹고 싶었다.

빵집 주인은 나를 보더니, 방금 구운 빵이라며 직접 만져보라고 했다. 빵은 여전히 따뜻했다. 사람 머리만큼 크고, 가운데가 뚫린 도넛 형태였지만 달지 않은, 담백한 맛의 빵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아쉬운 쪽은 빵을 사는 나보다 빵을 팔아야 하는 저 사람이 아닐까?’


나는 빵을 사면서 빵집 주인에게 설명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유럽 사람들은 종종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대부분의 몰타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먼저 ‘중국인이냐’고 물어보죠. 하지만 우리는 닮은 듯하지만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빵 주인은 손님도 없는데도 내 말에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그래서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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